[지구촌 위성시대/위성 위치인식 시스템]

  • 입력 1997년 2월 4일 20시 34분


[파리〓정영태기자] 프랑스의 파리 남서부 근교 위성도시 불로뉴 비양쿠르. 자동차 메이커 르노사의 현관문이 열리고 「사프란」승용차 한대가 미끄러져 나온다. 차의 목적지는 파리시내 오페라극장 근처의 어느 호텔. 강건너 멀리 에펠탑이 보일 뿐 운전자는 정확한 지리를 모른다. 그래도 운전자는 불안하지 않다. 운전석 계기판 바로 옆에 있는 「카르미나(Carminat)」단말기가 있기 때문이다. 카르미나 스위치를 눌러 목적지를 찾으면 곧바로 거리가 표시되고 가장 가까운 거리가 지도에 나타난다. 차에 타서 갈 곳을 정한 다음부터는 카르미나 단말기의 지시대로 운전하면 된다. 목적지까지는 버스와 지하철로 30여분. 평일 오후, 승용차는 울퉁불퉁한 길을 거침없이 달린다. 잠시후 센강을 건너 에펠탑을 끼고 좌회전. 개선문 로터리를 돌다가 여덟번째 길로 접어든 후 잠시 신호대기. 어느새 오페라극장이 차 앞으로 다가온다. 카르미나 계기판은 0㎞를 알린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음성메시지와 함께. 정확히 15분이 걸렸다. 운전하는 동안 단말기에는 조그만 별 네개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화면속에 깜빡이는 별들이 바로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길라잡이 노릇을 하는 「위성위치인식시스템(GPS)」위성이다. 혼잡한 도심에서는 전파간섭이 많기 때문에 위성신호가 약해진다. 바로 단말기 화면에 별의 수가 줄어들거나 아예 사라질 때다. 이때는 차량이 가지고 있는 지리정보에 의존한다. 위성신호가 다시 잡힐 때마다 그동안 달린 거리와 지리정보, 위성위치신호 등 세가지를 비교해 오차를 바로잡는다. 사프란 승용차가 몇m의 오차도 없이 파리 중심지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위성 덕분. 또 파리 지형을 디지털신호로 바꾸어 저장한 지리정보 CD롬이 차량 뒤편 트렁크안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위성은 유럽 하늘 어디에나 있지만 지리정보는 CD롬 한장에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외국을 차로 여행하려면 현지 지리정보를 담은 CD롬을 사서 갈아끼워야 된다. 해마다 두번씩 개정판이 나오는 CD롬은 두장 한세트에 5백프랑(약 8만원). 먼저 운전자가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카르미나 시스템이 GPS위성과 교신해 최적의 경로를 자동으로 탐색, 지도위에 표시한다. 가장 가까운 길을 고를 수도 있고 차가 밀리지 않는 도로를 골라서 갈 수도 있다. 초행길이라도 주소나 시설물만 알면 카르미나의 안내에 따라 운전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연료를 아낄 수 있다. 여행지역의 △교통상황 △주차장위치 △숙박시설 △주요건물 등 종합 정보도 알 수 있다. GPS 단말기는 운전자가 어느 지점에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이쪽은 막혔으니 돌아가라」는 귀띔도 한다. 독일사람이 프랑스차를 몰아도 언어에 문제가 없다. 여러 나라가 인접한 유럽의 지리적 사정을 고려해 같은 내용을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 5개국어로 읽거나 들을 수 있다. 카르미나계획은 94년부터 프랑스 교통부가 주관하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 유럽연합(EU)이 「유레카계획」의 하나로 추진해 오던 것이기 때문. 이처럼 편리한 카르미나 시스템도 아직까지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 한대를 차에 설치하는데 드는 비용이 무려 10만프랑(약 1천6백만원)이나 하기 때문. 웬만한 승용차값보다 비싸기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요가 많지 않아 값을 내리고 있기도 하다. 인공위성으로부터 신호를 받아 어디에 있는지 즉시 알아내는 것을 GPS라 한다. 카르미나 시스템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이 GPS지만 이것은 원래 엉뚱한 곳에서 출발했다. GPS위성은 원래 적을 감시하기 위한 군사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걸프전 당시 미군들은 휴대용 GPS를 몸에 지녀 사막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 후세인 왕궁을 자로 잰 듯 정확히 폭격했다. 이 기술이 교통 운송 측량 지구과학 등의 분야에서 첨단서비스상품으로 탈바꿈한 것은 냉전이 끝났기 때문. 옛소련의 개방 이후 미국정부가 인공위성 발신코드의 일부를 민간용으로 흘려 내보내면서 여러나라에서 앞다퉈 활용하기 시작했다. GPS위성을 가장 알뜰하게 활용하는 곳은 자동항법시스템 분야다. 위성이 쏘는 전파를 받아 비행기 선박 자동차 열차가 길을 잃지 않고 가장 빠른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첨단장치다. GPS는 현재 세계적으로 선박과 비행기 차량 등의 위치 파악과 운행정보 및 교신용으로 가장 많이 상용화하고 있는 추세. GPS를 이용한 항공기의 착륙유도는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연구돼 실용화 직전 단계에 있다. 미국의 경우 98년부터 기존 시스템을 GPS방식으로 대체해 나갈 계획. 앞으로 수신기가 소형화 고성능화하면서 값도 내려가 항공 선박 차량 뿐만 아니라 지리 탐사용이나 개인 휴대용품으로도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GPS의 응용분야도 △레저 △스포츠 △지리탐사 △해상석유탐사 △고고학 △조수(鳥獸)이동경로관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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