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화제]35년째 보신각 종지기 조진호씨

  • 입력 1996년 12월 27일 21시 29분


「尹鍾求 기자」 세모의 밤, 한해를 마감하는 제야의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지면 사람들은 종소리만큼이나 숙연히 한해를 반성하고 새해 각오를 다진다. 바로 그 세모의 밤이면 온 국민의 시선은 서울 종로구 관철동 102로 모인다. 이곳에 한햇동안 고이 보관된 보신각종이 제야의 종소리를 은은하게 울리기 때문이다. 모두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그 보신각 종소리 뒤에는 5대째 대물림을 해온 종지기의 정성이 있다. 조진호씨(70). 그에게 보신각종은 신앙의 대상이다. 그에게는 종이 아니라 「종님」이다. 정년을 10년이나 넘겼지만 그는 「종님」을 떠날 수가 없다. 후임자가 나서지도 않거니와 스스로의 애착 때문이기도 하다. 종각 한모퉁이에 두평 남짓한 관리사무실은 그의 24시간 삶터다. 밥도 직접 해먹고 잠도 여기서 잔다. 35년을 하루같이 종각마당을 쓸어 왔다. 아니 고조부때부터 1백50년째라고 하는 편이 옳다. 그가 5대 종지기가 된 것은 62년. 『조상대대로 지켜온 종님을 이젠 네가 모셔라』는 부친의 유언을 두말없이 받들었다. 당시 제법 돈벌이가 괜찮았던 미군부대 운전기사직을 하루아침에 팽개치고. 「종님」에 대한 신앙과 종지기는 가문의 천직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6.25전쟁 때도 아버님은 피란을 안가셨어요. 종님을사지(死地)에버려두고떠날 수는 없다시면서. 그바람에 어머니가 총탄에 맞아 오른팔을 절단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누구 하나 거역하는 가족이 없었지요』 그가 잠드는 시간은 새벽 2시. 종로통 네온사인이 빛을 잃고 사람들이 모두 종로를 떠난 후에야 눈을 붙인다. 『영등포에 아들이 살고 있지만 집에 가라고 해도 못가요. 종로가 좀 번잡한 곳인가요. 취객들이 들어와 객기를 부릴까 봐 새벽까지 지켜야 해요』 계단오르기도 만만찮은 나이지만 그는 틈만 나면 「종님」을 닦는다. 시내 한가운데 있다 보니 먼지와 매연이 심하다. 그는 고기를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살생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종님」을 모시는 종지기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란다. 매년 12월31일이면 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마음을 맑게 한다. 「종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종지기로서의 기본예의다. 종을 칠 때 그의 역할은 타봉 뒷부분을 잡고 강약과 속도를 조절하는 일. 종소리의 빛깔은 사실 그에게 달린 셈이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웠던 종소리는 46년 8월15일의 해방기념 타종. 수만명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친 대신 김구선생 이승만박사와 함께 보신각종을 친 것은 평생의 자랑거리다. 하지만 그는 아들에게는 6대째 종지기를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다. 『저는 목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 종님을 섬길 겁니다. 그러나 용산전자상가에서 도매업을 하는 외아들에게 내 뒤를 이으라고는 차마 말 못해요. 서울시 전문직 최하급인 「마」급 공무원, 2평짜리 사무실, 24시간 근무…. 아들에게 이자리를 강요한다면 죄많은 아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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