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의 半 일본의 半

  • 입력 1996년 12월 27일 21시 29분


12월인데도 일본 교토(京都)의 날씨는 우리나라의 중추(仲秋)를 연상케 한다. 가까운 낮은 산은 이제야 울긋불긋 단풍이 드는 것 같고 거리에는 은행나무 가로수의 한창 노란 잎들이 비를 맞아 겨우 낙엽이 지기 시작한다. 나그네 길에 비를 맞기란 반가울 것이 없지만 예상못했던 일도 아니다. 일본은 비가 많다고 일제 치하의 어린 시절에 배운 기억이 있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해엔 일본은 흉년이 들고 한국은 풍년이 든다고. ▼ 인간미-격식미의 차이 ▼ 서울시내에서 김포공항까지 차를 몰고 오는 한시간 반이면 날아 오게 되는 일본이지만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한일 두 이웃의 풍경은 그 빛깔부터 이렇게 판이하다. 동지섣달의 한반도는 천자문(千字文)의 첫줄처럼 하늘과 땅이 가물고 누런 천지 현황(天地 玄黃), 그야말로 추사(秋史)의 「세한도」(歲寒圖)를 보는 듯하지만 일본의 자연은 12월인데도 축축하게 젖은 푸른 빛이 윤기를 잃지 않고 있다. 홍수가 두려운 일본의 농사와 가뭄이 두려운 한국 농사. 그래서 우리들은 어렸을 때 일본의 비를 반만 우리에게 주고 한국의 뙤약볕을 반만 일본이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철부지다운 생각에 골몰해보기도 했다. 해방후 우리는 그같은 공염불 대신 도처에 저수지를 짓는 줄기찬 수리사업을 통해서 가뭄을 극복하고 해마다 풍년가를 구가하게 되었다. 한국 것의 반만 가져가고 일본 것의 반만 가져왔으면 하는 것은 기후 자연에만 그치는 것 같지 않다. 신바람이 나면 하늘을 날 것만 같고, 주눅이 들면 땅속으로 기어들 것만 같은 한국인의 조울증과 그를 나타내는 변화무쌍한 표정. 그에 비해 탈을 뒤집어쓴 광대처럼 싫으나 좋으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속에서 예의격식을 차리는 일본인. 씨름에 우승했을 때 한국의 천하장사의 거동과 일본의 요코즈나(橫綱)의 거동이 대표적이다. 어느쪽이 좋다 나쁘다 할 수 없는 문제일지 모른다. 나는 일본에 오래 살다 서울을 찾은 한 유럽친구가 『한국에 와서 비로소 마음놓고 웃었다. 해방된 기분이다. 다시 「인간」이 된 것만 같다』고 한 얘기를 잊을 수 없다. 일본인의 격식미(格式美)와 한국인의 인간미(人間味)도 서로 반반씩 나눠가졌으면 싶다. 일본의 「황성 옛터」 교토는 지금도 소형차가 겨우 한대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 도로망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넓은 신작로가 밀려드는 차량으로 체증을 일으키면 택시는 곧잘 이 좁은 옛골목으로 쏜살같이 빠져나간다. 나는 혀를 차고 놀랐다. 그 속도 보다도 단 한대의 불법주차 없이 휑하니 뚫린 골목의 모습을 보고. 교토에는 골목길에 주차하는 사람이 왜 한 사람도 없느냐고 묻자 택시 기사의 대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라고 했던 스탈린의 말이 떠올랐다. ▼ 서로 반씩 나누면 어떨까 ▼ 그러고 보니 일본은 독일보다도 더욱 혁명을 모르는 나라다. 한국에선 4월혁명과 6월혁명, 그리고 법을 어기고 5.16과 12.12의 쿠데타가 접종하고 있는 동안 일본에선 몇해전까지 자민당(自民黨)의 거의 반세기에 걸친 장기집권이 이뤄지고 있었다. 한국에선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구 정권을 부정하고 나서는 데 반해 일본에선 태평양전쟁 중국침략 한국병탄까지 긍정하려 하고 있다. 한국의 「과거 부정」과 일본의 「과거 긍정」. 그것도 서로 반씩 나눠가지면 어떨는지….(일본 교토에서) 최 정 호<연세대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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