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공직자와 심심풀이「월남뽕」

  • 입력 1996년 12월 26일 20시 24분


▼노름꾼은 손이 없으면 발가락으로 화투를 잡는다고 한다. 어떤 직장에서는 하도 화투놀이가 심해 금지령을 내렸더니 전화번호부를 펼쳐 합산(合算)끗수가 높은 사람이 돈을 따는 내기가 벌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한국인들은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화투장을 꺼내든다』고 외국언론이 비아냥댄 적도 있지만 고스톱으로 대표되는 화투놀이는 사실 우리사회 곳곳에 대중문화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심하면 몸도 축내고 돈과 시간을 앗아가는 망국병이란 비판에도 불구하고 화투놀이가 이처럼 성행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어떤 학자는 50년대 민화투, 60년대 육백, 70년대 나이롱뽕, 그 이후 고스톱이 유행하는 것은 당시 시대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래의 가족제도가 엄할 때는 민화투식의 단조로운 게임을 했고 정변(政變)이 잦자 단숨에 판세를 뒤집는 「뽕」이 나타났으며 요즘 고스톱 종류가 여러모로 가지를 치는 건 복잡다단한 사회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쨌든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화투놀이가 번창한 건 사실이다. 「국기(國技)」란 말을 들을 정도로 일상화돼 정말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나 함께 즐기는 게임이 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 놀이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오락보다 사행성(射倖性)이 더 크다는 데 있다. 근무시간도 아랑곳없이 여러 사람의 눈도 의식하지 않은 채 노름을 하다 패가망신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최근 수원역장이 직원 등과 함께 식당에서 화투를 치다 감사반에 적발돼 해직됐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점심시간에 잠깐 1천원짜리 월남뽕을 한 것이 그리됐다』면 안타깝지만 공직자로서 때와 장소를 못가려 망신한 것임엔 틀림없다. 연말연시면 이래저래 잦아지는 모임에서 심심풀이로 화투를 잡은 것이 패가망신으로 이어지지 않게 그저 조심할 일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