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 제모습 찾아라

  • 입력 1996년 12월 25일 20시 19분


또다시 파행과 공전을 거듭하는 연말국회를 보면서 대의(代議) 정치에 대한 깊은 회의와 절망감을 금치 못한다. 1백일 간의 정기국회가 여야 격돌로 막을 내린 뒤 임시국회가 소집됐으나 단독강행과 원천봉쇄가 맞붙어 며칠째 개회식도 못가진 채 표류하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이건 도무지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의 국회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토론의 정치이며 다양한 의견(意見)을 전제로 한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고 타협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곳이 국회다. 충분한 토론과 협의에도 타협이 안되면 표결에 부쳐 다수의 의견에 따르고 다음 선거때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의회정치의 참모습이다. 그런데도 우리 국회는 여야가 만났다 하면 토론보다 오로지 힘싸움으로 결판을 내려하니 의회정치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원내 다수당이 소수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다수결(多數決) 원칙이 통하지 않는 국회 풍토가 계속되는 한 책임정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권자인 국민들로서도 어느 당의 잘잘못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힘과 힘이 맞붙어 정치를 뒤죽박죽으로 휘저어놓는 이런 행태가 일반사회에 끼치는 악영향도 크다. 무엇보다 원내 교섭단체간에 사전합의가 안되면 국회기능이 정지되고 정상적인 의안처리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다. 여야 총무들이 밖에서 정치적으로 모든 것을 다 결정하고 국회를 연다면 그런 국회가 무슨 소용인가. 토론이 발붙일 곳은 없다. 2백99명의 국민대표들은 정당이 파견한 거수기일 뿐이다. 다수결 원칙이 다수의 밀어붙이기 수단이 돼서도 안되지만 소수라고 해서 무작정 극한 저지투쟁을 벌여서는 안될 것이다. 국회문을 못 열게 힘으로 막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지난해 3월 선거법개정파동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 또 입법부의 수장(首長)인 국회의장을 사실상 연금하고 회의장 진입을 막은 것은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민련 탈당사태를 둘러싼 반발과 불만표시는 있을 수 있으나 이 또한 국회를 열어 따져야 할 문제다. 여야는 내년 대선을 의식한 당리당략 때문에 더 이상 헌법기관인 국회를 능멸하지 말기 바란다. 명분없는 몸싸움에 국회 처리가 시급한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 도로교통법개정안 등 14개나 되는 민생법안들이 잠자고 있다. 하루빨리 국회를 정상화시키고 대화와 타협의 정신으로 연내 묵은 숙제를 말끔히 풀고 넘어가야 한다. 국회가 하루빨리 제모습을 찾아야 새해부터 경제회생(回生)과 민생안정이라는 국가적 과제 해결에 주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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