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 가혹수사 문책하라

  • 입력 1996년 12월 20일 08시 15분


검찰이 李成煥(이성환)과천시장의 수뢰혐의 사건을 수사하면서 관련 피의자들에게 가혹행위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서울고법이 가혹행위 등을 이유로 이시장 등에게 무죄를 선고, 불법적인 강압수사관행에 제동을 건 것은 피의자의 인권보호에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민선시장의 수뢰혐의를 추궁하는 검찰조사가 이처럼 가혹행위를 수단으로 할 정도라면 일반 시민들에 대한 검찰수사가 어떨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재판부는 구타와 쪼그려뛰기 잠안재우기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관련피의자들의 주장, 함께 수감됐던 재소자들의 법정증언, 의사의 진단결과 등을 근거로 가혹행위에 의한 강압수사였음을 인정했다. 검찰은 이시장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뇌물공여 피의자에게 가혹행위를 한 것이다. 가혹행위는 수사기관이 물적증거가 없거나 부족할 때 쓰는 전근대적 수사수법이다. 구타 등에 의해 진실을 털어놓는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피의자는 육체적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거짓자백하는 사례가 적지않다. 가혹행위는 피의자의 인격을 모욕하는 중대한 범죄일 뿐 아니라 실체적 진실과도 거리가 먼 수사결과를 낳는다. 이 때문에 우리 형법은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은 자백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는 법원이 유죄의 증거로 삼지 못하게 규정해 놓고 있다. 이번 서울고법의 판결은 적법한 방법으로 수집한 증거만이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무죄를 내린 점에서 당연한 것이다. 검찰은 이 사건의 변호인단이 가혹행위 의혹을 제기하자 수사상 필요를 내세워 변호인 접견마저 금지해 버렸다고 한다. 변호인 접견권은 피의자의 인권보호와 재판준비를 위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부여하고 있는 엄연한 권리다. 이를 수사기관이 멋대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 확립된 대법원 판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뇌물이 실제로 오갔는지 여부를 떠나 검찰은 엄청난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더구나 검찰은 모든 수사기관을 지휘하는 수사의 중추다. 적법한 절차를 준수해 수사를 하도록 경찰과 안기부 등을 지도 감독해야 할 검찰이 앞장서서 이런 불법수사를 자행했다는 것은 지탄받을 일이다. 이번 가혹행위사건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지나쳐 버려서는 안된다. 더욱이 내년1월부터 인권보호를 위해 구속영장실질심사제라는 새 제도가 시행되는 마당에 수사기관들은 새로운 인권존중의 감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는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악습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관련 검사와 수사요원들을 엄중 문책, 다시는 검찰의 가혹수사가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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