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노트]김세원-30대는 「낀 세대」

  • 입력 1996년 12월 17일 20시 00분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려면 송년회란 이름아래 서너군데 술집을 순례해야 한다. 대학서클 송년회 덕분에 「30대를 위한 카페」라는 델 가봤다. 황토벽에 고서들이 가득 꽂힌 실내에는 이름답게 80년대초 많이 불렀던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손님들도 불러오르기 시작한 배와 눈가의 잔주름을 어찌할 수 없는 30대가 대부분이었다. 서로의 안부를 물은 뒤 대화가 자식자랑을 거쳐 신세타령으로 이어질 즈음 누군가가 『낀 세대끼리 한잔하자』며 건배제의를 했다. 낀 세대(?). 탄탄한 외국어실력과 컴퓨터로 무장한 20대와 경제발전의 공로를 내세우며 기득권을 주장하는 40,50대 사이에 「낀 세대」란 얘기였다. 하긴 주부에서부터 대통령까지 경쟁력으로 평가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20대의 자기주장도 40,50대의 지난한 역사도 갖지 못한 30대가 딱히 내세울 만한 것은 없다. 기업 경쟁력제고태풍에 휩쓸려 한창 일할 나이에 퇴직걱정부터 해야 하는 게 30대다. 수직에서 수평행렬구조로 바뀐 기업조직은 중간관리층인 30대의 권한을 없애고 책임만 남겨놓았다. 자판만 두드리면 끝없이 정보를 공급해주는 컴퓨터 앞에선 「밥그릇」숫자도 소용이 없다. 세계화바람속에 외국어평가시험으로 대치돼버린 승진시험에 턱걸이 하려면 「새벽과외」라도 해야 할 판이다. 어느 사회학자는 한국의 30대가 60년대말부터 70년대초의 급진주의 운동에 휩쓸렸던 서구의 「5월혁명세대」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학살과 분신, 적과 동지의 극한적인 정서가 출렁이던 80년대초에 청년시절을 보낸 30대에게 적어도 그 시절에 만큼은 국가와 민족보다 개인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었다. 자신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했던 이들이 다른 세대에게 뒤지는 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술이 얼큰해지자 독창으로 시작된 「아침이슬」은 어느새 술집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합창으로 바뀌었다. 30대 특유의 집단의식이 빛을 발하는 순간, 누군가 다시 『걸친 세대끼리 한잔 하자』고 외쳤다. 20대의 정열과 40대의 고뇌를 간직한 30대는 더이상 낀 세대가 아니다. 김 세 원<사회1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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