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유엔총장이 강대국 이기심으로 좌우되다니…

  • 입력 1996년 12월 12일 19시 57분


▼유엔은 부트로스 갈리 현 사무총장의 5년임기가 이번 연말로 끝나지만 아직 후임자를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74세의 이 노련한 이집트외교관은 미국으로부터 유엔개혁 부적격자라는 불명예스런 말을 들으며 퇴장하게 됐다. 92년 제6대총장에 취임한 그는 유엔의 위상강화를 특별히 내세운 인물이다. 결국 거부권을 가진 미국의 힘에 밀려나지만 그 파문은 간단치 않다 ▼전체 유엔예산의 25%를 부담, 사실상 유엔살림을 떠맡고 있는 미국은 일찍부터 그를 고운 눈으로 보지 않았다. 유엔을 강대국 수중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노력이 워싱턴을 자극한 것이다. 미국이 「갈리 연임」에 반대하자 이번에는 같은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와 중국이 반발했다. 중국은 미국이 지명하는 총장후보는 무조건 거부하겠다고 했고 프랑스는 불어권 총장이 아니면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엔무대에서 강대국들의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갈리 쫓아내기에 성공한 미국이 한발 물러서 있는 사이 아프리카의 가나 출신인 코피 아난 유엔평화유지군 담당 사무차장이 유력한 후보로 등장했다. 안보리 표결까지 했으나 프랑스가 반대했다. 갈리총장이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은 인물인데 비해 아난사무차장은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친미(親美)인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임이사국중 어느 한 나라만 반대해도 총회에 총장으로 추천할 수 없다는 규정을 강대국들이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 판국이다 ▼과거에도 트리그브 리 초대총장이 한국전에 유엔군파견을 하게했다고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 연임에 실패했고 쿠르트 발트하임 4대총장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 3차연임을 못했다. 그러나 유엔사무총장은 사무국만 총괄하는 단순한 행정책임자가 아니다. 그는 세계평화를 중재해야 할 사람이다. 몇몇 강대국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총장자리가 좌우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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