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예산 처리방식에 이의있다

  • 입력 1996년 12월 12일 19시 56분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의 새해 예산안 처리방식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헌법에 정한 처리시한을 넘긴 것도 말이 안되는데 끝까지 「연계전략」의 고리를 못풀고 힘겨루기만 거듭했다. 또 그 와중에 예결위원은 물론 정당들까지 막판 「나눠먹기」에 정신이 팔려 안(案)자체를 떡 주무르듯했다. 밀실(密室) 흥정을 통해 한해 나라살림을 결정하고 당리당략이 춤추는 이런 작태(作態)를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예산안이 다른 정치현안과 연계처리되는 악습(惡習)은 이제 관례가 돼버렸다. 헌법에는 매년 12월2일까지 국회가 다음해 예산안을 심의 처리토록 돼 있으나 국회 스스로 이를 지킨 적은 드물다. 설령 지켜도 나라살림과 별 상관없는 정치쟁점을 한데 묶어 일괄처리 형식을 취하는 게 보통이다. 국민세금을 적정히 걷어 올바로 쓰는지 감시하는 국회의 예산심의권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볼썽사나운 모습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재연됐다. 제도개선안 마련에 예산안을 볼모삼아 시한을 넘기고도 끝내 연계고리에 발이 묶였다. 게다가 법정시한전 제대로 된 심의조차 외면하던 예결위원들은 계수조정작업에 들어가자 자신의 지역구 민원성 예산 늘리기에 급급했고 여야 정당 모두 이른바 「텃밭」 지원금을 한푼이라도 더 따내려고 열을 올렸다. 이런식으로 선심예산을 1천6백억원이나 증액해 놓고 막판 타협이니 뭐니 하며 합의통과시켜본들 그게 진정 국민을 위한 예산심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예결위원들의 예산안 밀실조정은 늘 말썽이긴 하지만 이번엔 특히 정도가 심했다. 계수조정소위에서는 누구의 감시도 없이 의원들끼리 70조원이 넘는 예산항목을 조정하며 각자의 지역 선심성 예산을 끼워넣은 흔적이 역력하다. 여야의 밀실야합은 책임정치를 어렵게 만들뿐더러 4년간 해마다 이런 식으로 돌려가며 나눠 먹는다면 국가예산이라기보다 국회의원들 주머니예산밖에 안된다. 예산안 나눠먹기도 염치없는 일인데 국회는 마지막까지 당략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제도특위에서 선거사범 연좌제를 완화해 호된 여론의 질책을 받고서도 이를 고치기는커녕 연좌제에 걸린 특정의원의 구제여부를 둘러싸고 여야간 설전을 거듭했다. 국민전체의 한해 삶과 직결된 예산안을 이런 식으로 지연처리해도 되는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같은 예산처리방식은 더 이상 안된다. 예결위를 상설화하든지 다른 현안과 예산안을 연계심의하는 일은 아예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특히 밀실담합을 막기 위해 계수조정소위 회의는 공개해야 하며 최소한 회의록은 남겨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예산안을 둘러싼 고질병은 고쳐질 수 없으며 국회와 여야에 대한 정치불신만 증폭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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