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수능」을 괴롭히는 것들

  • 입력 1996년 12월 11일 20시 17분


97학년도 대학 수능시험은 수험생들의 평소 실력을 알아보는데 일단은 성공한 시험이다. 종래의 시험들은 과외라든지 입시학원의 문제집같은 것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었다. 그러나 이번의 수능시험은 과외나 연습문제풀이 같은 것과는 성질이 다른 문제들이 출제되었다. 출제문제들도 종합적인 사고능력이 약한 수험생들이 풀어내기에 아주 곤혹스런 것이었다. ▼고득점자는 과외 안해▼ 고득점자일수록 이구동성으로 이런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고득점 학생의 경우 대체로 과외를 받은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는 시간이 있으면 이책저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생각을 가다듬었던 그런 것들이 수능문제풀이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고득점자의 부모가 자녀에게 보여준 시험준비태도다. 부모는 자녀에게 과외를 강요하거나 높은 점수를 따라고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오히려 시험준비에 찌든 자녀에게 취미생활을 권장했다. 급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번의 수능시험은 학교나 학부모가 자녀에게 인간교육을 베풀 때 비로소 수능의 고득점도 가능하다는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수능시험은 더욱 더 과외나 문제집중식의 공부나 학부모가 강요하는 단기간의 과열과외가 쓸모없는 돈 낭비임을 깨닫게 하는 그런 시험제도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교육다운 교육, 인간교육을 받은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수능시험으로 정착되기만 하면 수험생들은 생기를 되찾고 학교교육은 되살아날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을 하는데는 수능시험만으로는 힘에 부칠 것이다. 현실적으로 수능시험이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강력한 대안이 되는 것도 아니며 지금과 같은 수능시험제도가 오래 계속될 경우 수능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도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별다른 준비없이 매년 새로운 시험문제만을 출제하는 식으로 수능을 끌고 가다가는 수능시험은 몰지각한 사람들에게 악용되거나 혹은 입시과외에 완패당할 것이 분명하다. 이번의 수능시험이 과외를 이긴 것은 문제 출제형식의 생경함 때문이라는 것이 입시학원선생들의 진단이다. 이번과 같은 새로운 유형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로서는 답을 찾는데 그들 말로 말하자면 썰렁했다는 것이다. 문제자체가 어려워서 정답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방식의 문제가 출제되었기에 수험생들이 당황한 나머지 정답을 제대로 집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의 수능시험에서 완패당한 입시학원들은 98학년도의 수능시험이 설욕전이 될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 앞으로는 독선생이나 대학생 과외 실력 갖고는 수능문제대비에 「게임」이 안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학교에서는 이번의 수능시험이 요구하는 통합교과식 수업을 시키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학교가 새로운 문제출제에 미리미리 민감하게 대비하는 것도 아니기에, 입시학원의 과학화된 과외기술력만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학교재정지원 잣대」 한심▼ 과외만이 수능시험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시 도 교육감은 학생들의 수능시험점수로 일선고교의 실력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재정지원을 차등화하겠다는 교육방침을 세워놓았단다. 수능시험결과에 따라 일선학교장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발상자체가 한심하다. 이런 일이 본격화되면 학교장이 해야 할 일은 단 한가지다. 그 옛날처럼 교사를 독려해가면서 학생들을 수능기계로 만드는 일, 그것 밖에는 할 일이 없다. 제발 바라건대 수능시험제도가 대학 본고사라는 여우를 교실로부터 몰아내기 위해 불러들인 늑대꼴이 되지 않도록 교육부가 서둘러서 그들에게 재갈을 물려야 한다. 한 준 상<연세대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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