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복수노조문제를 재론한다

  • 입력 1996년 12월 5일 20시 12분


기왕 어렵게 노동법을 개정하는 마당이라면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문제 등 주요 쟁점사항을 이번 기회에 국제기준에 맞게 완벽하게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본란은 그동안 복수노조를 원칙적으로 반대해왔다. 복수노조는 근로자끼리의 갈등과 선명성경쟁을 불러 기업경영을 어렵게 하고 노동운동을 과격한 방향으로 몰아갈 위험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사실상 존재하는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라는 법외 노동단체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사회적 책임을 지울 필요가 있었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에 따라 노동법체계를 국제기준에 맞게 정비할 필요도 있었다. 이러한 내외여건을 감안하여 본란은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경우라도 상급단체에 한정하는 방안을 차선책으로 제시한 바 있다. 본란의 이 제안은 어디까지나 기업단위 복수노조가 우리 기업환경에서 극히 모험적이라는 판단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새 노동법안에서 내년부터 상급단체에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5년의 유예기간 뒤에는 기업단위에까지 복수노조를 허용하며 그때부터 노조전임자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어정쩡한 안을 선택했다.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사용자를 상대로 임금인상을 협상하는 조직이 바로 그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우선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다.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노조가 대등성을 확보하려면 사용자의 영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용자로부터 임금은 물론 어떤 지원도 받지 않는 자세가 도덕적으로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정부의 새 노동법안은 기업단위 복수노조를 5년 뒤로 미루려다보니 그와 맞바꾸듯이 노조전임자 임금문제도 5년 뒤로 미루는 이상한 모양이 되고말았다. 노조전임자 임금을 5년 뒤에 지급하지 않기로, 그것도 기업단위 복수노조와 맞바꾸는 조건으로 법을 개정할 경우 그 실현은 매우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5년뒤라면 정치와 시대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가지 제도의 실시를 5년 뒤로 미룬다는 것은 귀찮은 쟁점을 우선 피하고 그로 인한 낭비요인을 뒤로 미루는 것이다. 노동법체계의 국제기준화나 국가경쟁력을 갖춘 세계국가로서 발돋움하기 위해 노사관계의 틀을 다시 짜야하는 시대요구에도 맞지 않는다. 더욱이 5년 뒤의 기업단위 복수노조를 전제로 한 상급단체 복수노조체제는 기업노조를 서로 산하에 두려는 두 상급단체간의 세력다툼을 격화시켜 혼란을 빚을 위험마저 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기업단위 복수노조도 허용하고 노조전임자 임금도 기업에서 못주도록 한꺼번에 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되 올해 안에 국회에서 노동법을 개정토록 해야 한다. 만약 봄철 노사협상시기와 대통령선거가 겹친 내년으로 법개정을 미룬다면 사회적 혼란만 커질뿐 노사관계의 대전환은 영영 이룰 수 없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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