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勞-使 「위기의 계절」

  • 입력 1996년 11월 25일 20시 22분


『이게 개악이지 개혁입니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이다 뭐다해서 선진국 수준운운 해놓고 이게 뭡니까. 정리해고요. 새로운 것 같지만 실상 현장에선 소리소문 없이 기업주들이 다 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사업못합니다. 지금도 노사협상하면 대립하고 투쟁인데 복수노조 같은 것 생겨보세요, 1년 내내 협상하고 노조 뒤치다꺼리 하다 일 다 볼 거예요. 도대체 뭘 위한 법 개정입니까』 노사제도 개혁안을 놓고 여기저기에서 격렬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노동자도 불만이고 사용자도 불만이다. ▼「法 개정」 싸고 소모전 ▼ 노동계와 사용자, 공익대표들이 근 6개월이상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냈지만 합의도출에 결국 실패한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민주적인 합의가 얼마나 어려운 가를 실감한다. 노사개혁안의 공은 이제 정부손에 넘어가 있다. 아직 분명히 드러나고 있진 않으나 정부의 독자적인 노동법 개정안은 새로운 방안이 아니라 노사 공익안을 절충한 형태인 것 처럼 보인다. 말이 좋아 절충이지 일각에선 「계륵」으로 전락했다고 혹평한다. 노사 양측이 강력히 주장한 복수노조, 노조전임자 급여금지같은 예민한 사안들이 어느 쪽도 호응하지 않는 방향으로 후퇴한다면 사태는 급류를 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24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던 노총주최의 노동자 집회는 그래서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5만여명이란 숫자의 의미를 넘어 그 열기나 강도에서 노사, 노정(勞政)간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한국경제의 선진화와 경쟁력 향상이란 공감대를 바탕으로 출발한 노동법 개정작업이 어쩌다 이렇게 되고 말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노사문제의 본질로 한번 돌아가 보자. 노사관계가 대립구도에서 협력구도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시야를 조금만 바깥으로 돌려보라. 시장여건이 하루하루 바뀔 뿐만 아니라 기술진보가 가속화하고 경쟁이 글로벌화 하면서 경쟁의 속성이 달라졌다. 이것은 노사관계에 대한 인식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이번 제도개혁에서 노사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정리해고제와 복수노조만 해도 그렇다. 노동시장에 정리해고제가 도입되어야 하는 경제적 이유는 분명하다. 기업의 생산은 시장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불황으로 재고가 쌓이면 생산을 줄여야 하고 호황때는 반대로 산출을 확대해야 한다. 시장이 불황인데도 많은 설비와 고용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면 기업은 결국 도산할 수밖에 없다. 다시말해 감량경영을 하면 살아날 수 있는 기업이 고용체제의 경직성으로 인해 파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 협력없인 경쟁력 없어 ▼ 기술구조가 급변하고 첨단분야로 이동이 급해질수록 시장상황에 신축적으로 대응하는 유연한 노동시장의 필요성은 커진다. 복수노조 문제는 국제노동기구(ILO) 및 OECD가입으로 피할 수 없는 대세다. 노조설립 자유화는 경제의 선진화 관점에서 과감히 수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세계 어디를 둘러보아도 어느 쪽이 혼자 인센티브를 독차지 할 수 없는 노사협력구축의 시대다. 기업이 다국적화하고 있는 마당에 사용자가 자기의 이득만을 외친다면 회사를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모든 기득권을 하루 아침에 잃을 것이다. 한국에서 한달 벌면 일년 임금을 손에 거머쥐는 사람들이 동남아에 지천으로 있다는 사실도 노동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李 寅 吉 <경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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