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장관 전격교체 배경]「사퇴 잡음」줄이려 신속 경질

  • 입력 1996년 11월 6일 20시 41분


「金東哲 기자」 孔魯明전외무장관의 사표제출―수리―후임발표의 과정은 매우 신속했다. 이는 金泳三대통령의 심중을 반영한다. 金대통령은 5일저녁 孔전장관의 사표제출이 알려지자 마자 尹汝雋대변인을 통해 이를 발표, 기정사실화하고 6일오전 후임자를 발표했다. 『격무로 건강이 악화돼 孔장관이 그만두게 된 것을 金대통령은 마음아프게 생각하고 있다』고 尹대변인은 발표했으나 金대통령은 孔전장관의 퇴진을 이미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게 만든 요인은 무엇인가. 청와대 관계자들은 몇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같다고 풀이한다. 우선 인민군 복무전력. 孔전장관의 인민군 복무전력이 95년2월 「말」지에 보도돼 「문제 없다」는 결론이 났으나 최근에 한 주간지가 이를 다시 다루려 하자 孔전장관이 부담을 느꼈으리라는 것. 또하나는 투서관련성.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사정(司正)과는 관계없다』고 단언하지만 외무부인사의 일부 잡음이 투서로 이어졌고 투서내용에 대한 내사과정에서 약간의 다른 문제가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사라지지 않는다. 孔장관체제에서 외무부의 「일본파」와 「러시아파」가 득세하자 다른 쪽에서 반발했고 안기부일각에서도 孔장관에 비우호적인 보고서를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오는 20일 시작되는 金대통령의 동남아순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부 방문국과 마찰이 빚어져 金대통령이 크게 역정을 낸 일도 있다. 어쨌든 金대통령은 孔전장관을 경질하면서도 외교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려 했다. 2년 가까이 金대통령을 보좌해온 柳宗夏외교안보수석을 외무장관으로,潘基文의전수석을 외교안보수석으로 발탁한 것이 그것. 金대통령은 임박한 동남아 순방 및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를 위해서도 업무의 안정적 계속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따라서 외무장관은 바뀌었어도 외교안보정책의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국방장관에 金東鎭합참의장이 기용된데 이어 柳장관과 潘수석이 자리를 연이어 메우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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