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회사측,과로도 배상해야』 판결의 의미

입력 1996-11-03 20:31수정 2009-09-2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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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錫昊 기자」 과로로 쓰러져 7년동안을 전신불구로 지내온 裵병철씨(48)에 대해 법원이 이례적으로 회사측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이번 판결은 근로자들의 건강한 작업환경에 대해 기업측의 책임을 적극적으로 강조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법원은 그동안 산재보험부지급청구소송 등 행정소송과는 달리 기업측을 상대로 한 민사상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서는 불법행위로 인한 기업측의 책임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민사소송에서 법원의 판례는 회사측의 불법행위로 인한 업무상과로와 재해간의 「인과관계」에 대한 엄격한 입증을 요구해 왔다. 예를 들어 과로로 운전중 사망한 운전기사의 경우 그것이 「업무상재해」이기는 하나 그것이 회사측의 민법상 불법행위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더욱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해 왔었다. 裵씨사건의 경우도 회사측의 불법행위를 주장하는 원고측과 『카드놀이를 하다 쓰러진 것 아니냐』는 회사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재판부는 裵씨의 승소를 결정하기까지 4년이라는 기간을 보내야 했다. 이에 대해 재야법조계에서는 과로사 등에 대한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지적하고 법원이 민사소송에도 기업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정, 기업이 먼저 과로피해를 유발하는 작업환경을 변화시키는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일본의 경우 이미 폭넓게 회사측의 민사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 3월 도쿄지방재판소는 일본최대의 광고대행사인 「덴쓰」직원이 과로로 병을 얻고 우울증 상태에서 자살하자 회사측의 책임을 100% 인정, 1억2천만엔을 지급하라고 판결해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裵씨의 사건을 4년이나 무료로 수임했던 車炳直변호사는 『裵씨와 같은 경우는 가정과 회사에서 무거운 부담을 안고 있는 한국남성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79년 이 회사에 입사한 裵씨는 회사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촉망받는 엘리트 사원이었다. 그는 지난 85년 울산에 있는 해양사업본부 견적부 차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던 裵씨는 기숙사와 회사만을 오가며 일에만 열중했다. 견적업무는 2개월을 단위로 업무가 끝나기 때문에 裵씨에게는 일정한 출퇴근 시간이 없었다. 마감전에는 밤을 새우기도 하고 유창한 영어실력 때문에 해외 출장도 잦았다. 특히 87년 부서가 이동하면서 대량 퇴직사태가 발생, 사고당시에는 22명의 정원 중 12명만이 근무하게 돼 裵씨의 과로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사고당시 회사측은 『일과후 사고가 난 만큼 책임이 없다』며 가족들의 산재신청에도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무단결근으로 裵씨를 해직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金永壽판사는 『판례상 입증문제로 고심했다』며 『그러나 최근 근로자 과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행정소송의 경우 진보적인 판결을 내리고 있는 법원의 최근 분위기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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