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노트]내사랑 뚱보

  • 입력 1996년 10월 22일 19시 58분


유치원에 다니는 딸애가 느닷없이 「피아노를 끊겠다」고 고집부린 일이 있었다. 피아노선생님이 「똥배 나왔구나」하고 놀렸기 때문이란다. 날씬한 몸매에 대한 어 른들의 숭배의식이 꼬마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니 머리끝이 쭈뼛 솟는 느낌이었다. 최근 우리나라 성인 열명중 세명이 정상체중을 넘는다는 보도가 전해지면서 비만, 또는 「아랫배의 인품」에 관심갖는 이가 부쩍 늘었다. 「얼굴은 용서해도 몸매는 용서할 수 없다」는 요즘 남자들 때문에 정상체중 또는 미달체중 여대생의 81%가 「 살을 빼야한다」고 믿을 만큼 날씬함에 대한 강박관념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살빼기만큼 노력에 비해 효과보기 힘든 일도 없다. 기름기없는 식사와 격렬한 운동으로 며칠을 버티다가도 어느날 한밤중에 무엇에 씌 운 듯 맨발로 부엌으로 달려가 찬밥에 고추장을 넣어 썩썩 비벼 먹고는 극도의 자기 비하 심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리모컨같은 편의용품은 갈수록 늘고, 하는 일 없이 도 바쁘고 피곤해서 큰마음 먹고 산 가정용 헬스기구가 구석에서 썩기 일쑤다. 힘들 지 않게 살을 빼준다는 각종 「살빼기 산업」의 번창은 원하는 몸무게를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역설적으로 입증해 준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마빈 해리스나 데즈먼드 모리스 등 문화학자들은 다이어트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라고 친절하게 말해주고 있다. 역사이래 인류의 과잉체중 을 막은 것은 식량기근이었지 인간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시작하 면 끊임없이 「먹어대」하고 신호를 보내거나 음식물을 지방질로 바꿔 아랫배에 저 장하는 것은 식량이 부족했던 태고적 시절을 기억하는 우리몸이 하는 기특한 일이라 고 비만인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잘먹는 사람은 성격도 좋다는게 내 지론이다. 건강에 문제만 없다면 육덕(肉德)있 는 사람과는 같이 지내기도 푸근하다. 솔직히 몸무게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것도 이 제는 지겹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발상의 전환처럼 「뚱보가 아름답다」는 의 식이 확산된다면 우리가 아등바등 매달려 살고 있는 또하나의 우상을 깨뜨릴 수 있 을 것 같다. 金 順 德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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