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오영석 씨(60)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2007년 8월 18일 사고를 겪고 난 뒤부터였다. 중학교 동창들과 강원 인제로 떠난 1박 2일 여행 중 계곡에서 다이빙 실수로 목이 꺾여 척수가 손상되면서 전신이 마비됐다. 좌절한 오 씨는 병원에서 18개월간 자신을 간호했던 아내 이금희 씨(54)의 가슴에 못박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그날 이후 지체장애인이 된 오 씨는 그때마다 아내가 해준 대답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당신 돈 안 벌어도 돼. 내가 당신 책임질테니 치료 잘 받고 살아만 줘.” 냉방 설비 엔지니어였던 오 씨의 수입이 끊긴 뒤 아내는 미싱 공장에 취업했다. 하루 12시간을 일해 10만 원가량의 일당을 벌며 남편 재활과 초중고교 학생이던 두 딸 육아도 책임졌다.
아내의 헌신은 남편의 굳은 근육을 움직이게 했다. 퇴원 후 오 씨는 “빨리 회복해 아내를 덜 고생하게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스스로 복지관을 찾아 탁구 연습을 시작했다. 오른손잡이인 오 씨는 완전히 굳어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 대신 손가락이나마 까딱할 수 있는 왼손으로 탁구채를 잡았다.
처음 목표는 ‘탁구공을 네트 너머로만 넘겨보자’였다. 근육이 뒤틀리는 아픔을 감수하며 팔을 수십번 휘둘렀지만 공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탁구를 시작한 비장애인 동료들의 실력이 늘면서 ‘내가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상대가 친 공을 잘 받아치려다 자신도 모르게 휠체어에 기댄 채 일어나 스매싱을 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오 씨가 20일 서울시장애인체육회 주최로 열린 장애인생활체육대회에 참가한 것도 아내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이날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만난 오 씨는 “사고 이후 아내가 나를 복지관, 동창 모임 등에 데려다줬다. 내가 자꾸 집에만 있으려하니 사람도 만나고 운동도 할 수 있게 항상 도와줬다. 내 아내는 천사”라고 말했다.
오 씨는 이제 같은 복지관 소속 탁구 동료 10명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가 됐다. 이따금 70대의 비장애인 신입 회원이 복지관을 찾으면 함께 공을 치며 탁구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오 씨의 생활도 달라졌다. 사고 직후엔 아내가 좌약을 넣어줘야만 대변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일상이 불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스스로 화장실도 가고 식사도 해결할 수 있다.
오 씨는 “사고가 났을 때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상황이었다. 장애가 생겼을 때는 불평도 많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며 “앞으로도 열심히 운동해서 아내의 고생을 덜어주고 싶다. 지금의 삶을 더 소중히 쓸 것”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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