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전 감독이 ‘설국’ 강릉에 간 까닭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1월 11일 05시 30분


신영철 전 감독이 9일 강원도 강릉 율곡초등학교에서 ‘레전드 초청 강원랜드 스포츠 꿈나무 교실’ 배구 강습을 마친 뒤, 아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수줍어했던 아이들의 표정이 무척 밝아졌다. 강릉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신영철 전 감독이 9일 강원도 강릉 율곡초등학교에서 ‘레전드 초청 강원랜드 스포츠 꿈나무 교실’ 배구 강습을 마친 뒤, 아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수줍어했던 아이들의 표정이 무척 밝아졌다. 강릉 |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강원도 강릉으로 향하는 KTX는 곧 ‘설국열차’였다. 국토의 남쪽으로만 깔려있던 고속철도가 이제 동쪽으로도 뻗어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마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빚어낸 효과라 할 수 있을 터다.

KTX의 속도로도 서울역 기준 2시간이 걸리는 곳이 태백산맥 동쪽 너머의 강릉이다. 여기까지 신영철(54) 전 한국전력 감독은 9일 직접 차를 3시간 이상 몰고 왔다. 이미 내린 눈으로 강원도 곳곳이 하얗게 덮여 있었고, 밤부터 또 눈 예보가 되어있음에도 먼 길을 달려왔다. 강릉 율곡초등학교(남자부)와 옥천초등학교(여자부)의 배구 꿈나무들을 만나기 위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강원도 강릉까지 ‘레전드 초청 강원랜드 스포츠꿈나무교실’(주최 스포츠동아·동아일보·채널A·동아닷컴, 후원 강원랜드)을 위해 배구 레전드가 방문하자 아이들은 물론 현장 지도자들까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9일 강원도 강릉시에 위치한 율곡초등학교 체육관에서 ‘강원랜드 레전드 초청 스포츠 꿈나무 교실‘이 열렸다. 신영철 전 한국전력프로배구단 감독이 유소년들을 지도하고 있다. 강릉|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9일 강원도 강릉시에 위치한 율곡초등학교 체육관에서 ‘강원랜드 레전드 초청 스포츠 꿈나무 교실‘이 열렸다. 신영철 전 한국전력프로배구단 감독이 유소년들을 지도하고 있다. 강릉|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배구는 키가 아니라 기본기로 하는 것

신 전 감독은 첫 인사를 할 때 아이들을 서 있지 못하게 했다. “무릎을 보호해야 하니 앉으라”고 권했다. 프로팀 감독, 국가대표 코치를 경험한 신 전 감독은 배구 지도자 커리어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쳐본 경험이 거의 없다. 강습의 눈높이는 낮추되, 일관된 철칙은 기본에 대한 강조였다. 신 전 감독은 아이들에게 질문부터 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것과 가장 자신 없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스파이크, 토스, 블로킹, 서브 등의 대답이 쏟아졌다. 그러자 신 전 감독은 “여러분이 지금 말하는 것들은 거의 다 ’위에서 하는 배구‘다. 위에서 하는 배구는 키가 크면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아래에서 하는 배구‘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 나이에서는 아래에서 하는 배구를 익혀둬야 한다. 아래에서 하는 배구는 (키가 크지 않더라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배구계에서는 “키는 나중에 크는 편이 낫다”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는 작아서 리시브, 수비 연습을 많이 하고 나중에 키가 커서 스파이크, 블로킹을 연마하는 방향성이 선수를 완성시킨다는 얘기다. ‘배구여제’ 김연경이 이런 대표적 사례다. 처음부터 키가 크면 축복일 수도 있겠지만 자칫 기본기에 충실하지 못할 수 있다. 신 전 감독은 “프로에 갓 입단한 신인선수도 기본부터 다시 교육시킬 때가 있다”고 말했다.

9일 강원도 강릉시에 위치한 율곡초등학교 체육관에서 ‘강원랜드 레전드 초청 스포츠 꿈나무 교실‘이 열렸다. 신영철 전 한국전력프로배구단 감독이 유소년들을 지도하고 있다. 강릉|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9일 강원도 강릉시에 위치한 율곡초등학교 체육관에서 ‘강원랜드 레전드 초청 스포츠 꿈나무 교실‘이 열렸다. 신영철 전 한국전력프로배구단 감독이 유소년들을 지도하고 있다. 강릉|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리시브, 토스, 스파이크의 기본 그리고 반복

부상 방지를 위해 초등생 선수들의 몸을 풀어준 뒤, 신 전 감독은 남녀 팀을 나눠서 코트에 서게 했다. 그리고 배구공 2개를 집어넣었다. 1개씩을 양 팀에 넘겨준 뒤, 동 타임에 상대 코트로 넘기라고 했다. 조건은 언더 토스 자세로만 공을 받아야 하고, 받으면 패스를 하지 않고 바로 상대 코트로 넘겨야 했다. 이런 훈련을 단 한번도 한 적 없는 듯, 어린 선수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몇 번 넘기지 못하고 공이 바닥에 떨어지거나 네트 그물에 닿았다.

신 전 감독은 “공 2개를 넣은 것은 집중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다. 이것을 오래 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리시브 기본이 약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실제 어린 선수들이 직접 해본 뒤, 스스로 느끼게 만들고 교정하는 접근법이었다.

실습 뒤 원 포인트 레슨은 리시브에 이어 토스, 스파이크로 이어졌다. 배구는 팀 스포츠이지만 개인기술은 계속된 반복으로 완성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지켜볼 수 있었다. 신 전 감독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프로 선수들을 가르칠 때나 초등생을 가르칠 때나 열정만큼은 변함없었다.

9일 강원도 강릉시에 위치한 율곡초등학교 체육관에서 ‘강원랜드 레전드 초청 스포츠 꿈나무 교실‘이 열렸다. 신영철 전 한국전력프로배구단 감독이 유소년들을 지도하고 있다. 강릉|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9일 강원도 강릉시에 위치한 율곡초등학교 체육관에서 ‘강원랜드 레전드 초청 스포츠 꿈나무 교실‘이 열렸다. 신영철 전 한국전력프로배구단 감독이 유소년들을 지도하고 있다. 강릉|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땀은 친밀함을 만든다

처음에는 신 전 감독을 어려워만 했던 아이들의 표정이 훈련을 거듭할수록 밝아졌다. 더불어 땀을 흘리며 어떤 친밀함이 쌓인 것이다. 세 시간에 가까운 훈련을 휴식 없이 마친 뒤, 아이들은 스태프가 마련한 피자를 먹으며 ‘1일 멘토’ 신 전 감독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자가 기회를 주자 서로 손을 들었다. 옥천초등학교의 여학생 세터는 “세터로서 어떨 때 가장 힘이 드나요?”라는 진지한 질문을 꺼냈다. 신 전 감독은 “내가 올려준 볼을 공격수가 뜻대로 스파이크하지 못했을 때 같다. 그럴 때 세터는 동료를 탓하면 안 된다. 배구는 팀 스포츠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약식으로 실전 게임까지 한 뒤, 아이들은 신 전 감독을 가운데 두고 기념촬영을 했다. 사인회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반나절이 훌쩍 지났다. 의외로 아이들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없었다. 먼 훗날 이 아이들 가운데 한국 배구를 책임질 스타플레이어가 탄생한다면, 이날을 어떻게 기억할지 문득 궁금했다.

강릉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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