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아련해지는 공한증(恐韓症)을 되살릴 수 있을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12월 8일 05시 30분


지난 2010년 동아시안컵에서 중국에 0-3으로 패했던 한국.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 2010년 동아시안컵에서 중국에 0-3으로 패했던 한국.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중국과의 A매치(대표팀간 경기)를 앞두고는 으레 등장하는 단어가 있었다. 공한증(恐韓症). 중국축구가 한국축구를 두려워한다는 걸 비유적으로 한 말인데, 식상할 정도로 많이 쓰였다. 실제로 중국은 오랜 기간 한국만 만나면 기를 펴지 못했다. 이런 탓에 중국은 어떻게 하면 공한증에서 벗어날까를 고민했고, 한국은 그건 어림없다는 식으로 여유를 부렸다.

중국 기자들을 만나면 꼭 듣게 되는 질문이 있었다. “공한증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무리 해도 이기지 못하니 답답해서 하는 질문이었다. 예의상‘심리적인 요인’을 부각시키며 짧게 대답해주면서도 속마음은 꼭 그렇지 않았다. 지도자의 전술 능력이나 선수 개개인의 기량 차이가 컸다는 점을 나도, 그들도 모르지 않았다.

공한증이 태동한 시기는 3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과 중국은 1978년 12월17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2차 리그에서 처음 마주했다. 한국은 후반 2분 터진 차범근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겼다. 이후 한국은 중국만 만나면 자신만만했고, 중국은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한국 앞에선 꼬리를 내려야했다. 그 기간이 무려 32년이다.

2010년 1월까지 한중전은 27차례 열렸는데, 한국은 16승11무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

벼르던 중국이 기를 처음 편 때는 2010년 2월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다. 허를 찔린 한국은 0-3으로 졌다. 무패행진도 끝이 났다. 중국이 얼마나 힘든 고통의 세월을 보냈는지는 당시 그들의 환호를 보면서 짐작이 갔다. 우리 입장에서야 진 게 분하더라도 한번쯤 그럴 수도 있다며 넘길 수 있었지만 그들은 달랐다. 이제 공한증이 치료됐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열린 3차례 경기에서 한국은 2승1무를 거두며 공한증의 효력을 살려갔다.

지난 3월 중국 창사에서 중국에 0-1로 패한 한국.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지난 3월 중국 창사에서 중국에 0-1로 패한 한국.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그런데 올해 초 한국은 중국에 된통 당했다. 이른바 ‘창사 참사’다. 3월23일 중국 창사 허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중국에 0-1로 패했다. 2010년 이후 7년1개월만이자 32번째 A매치에서 두 번째 패배를 당한 것이다. 중국 원정에서는 처음으로 졌다. 중국은 월드컵 본선진출이 좌절됐지만 한국을 이긴 것으로 위안을 삼을만했다. 무색무취 전술의 슈틸리케 감독과 투쟁심 없는 대표선수들은 호된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날 이후 공한증의 유통기한이 다된 게 아니냐는 말들이 많아졌다.

40년 가까이 진행된 한중간 역대 전적은 18승12무2패로 한국이 많이 앞서 있긴 하지만 이제 중국이 공한증에 시달릴 정도는 아니라는, 또 실력차가 확연히 줄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10월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한국이 중국에 뒤지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판단을 잠시 유보하고 싶다. 창사 참사의 충격이 컸던 건 사실이지만, 중국이 잘했다기보다는 우리의 경기력이 형편없었던 게 더 큰 원인이라는데 방점을 찍고 싶다. 물론 중국을 얕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하고, 실력차가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한국과 중국이 대등한 기량이라는 평가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한국과 중국의 남자축구가 9일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서 맞붙는다. 장소가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인데, 7년 전 한국이 중국에 0-3으로 지면서 무패행진이 끝난 바로 그곳이다.

지난해 중국과의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 경기 장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해 중국과의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 경기 장면.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공교롭게도 같은 경기장에서 같은 상대를 만나는데, 입장은 서로 바뀌었다. 이제 우리가 패배의 쓰라림을 되돌려줘야 할 차례다.

물론 양 팀 모두 최상의 멤버로 꾸린 대회가 아닌 만큼 승패보다는 실험적인 요소가 강할 수 있지만, 그래도 국제대회의 결과는 선수들의 심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대회 첫 경기라는 점에서도 더욱 더 승리가 중요하다. 신태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처음 치르는 중국전이다. 공한증의 기억을 되살려보자.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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