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외야석] 사연도 제각각 조범현의 유산 kt 막강불펜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4월 11일 05시 30분


전 kt 조범현 감독. 스포츠동아DB
전 kt 조범현 감독. 스포츠동아DB
0.00, 10일까지 kt의 불펜 방어율이다. 이제 8경기를 치른 시점이지만 kt는 막강한 불펜 전력의 힘으로 리그 1위(7승1패)에 올랐다.

KBO리그는 불펜 의존도가 높은 리그다. 지난해까지 극심한 타고투저 속 불펜 전력은 강팀의 첫 번째 조건이 됐다. 롯데나 한화는 불펜 전력 구축에 100억 원 이상 돈을 투입했을 정도다. KBO리그 뿐 아니라 최근 메이저리그 흐름도 갈수록 불펜을 중시하고 있다. 특급 마무리 투수와 8회를 책임져줄 키 플레이어의 인기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kt의 불펜 전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난 2년간 코칭스태프의 헌신, 감독의 과감한 결단, 그리고 선수들의 혼신을 다한 노력이 숨어 있다.

비가 많이 내리던 5일, 위즈파크 kt 김진욱 감독 방을 찾았다. 쉼 없이 커피를 마시던 김 감독은 감독방 상황판에 적힌 불펜 투수들의 이름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김재윤 4경기 무실점, 심재민 4경기 무실점, 조무근 4경기 무실점, 장시환 3경기 무실점, 그리고 엄상백 2경기 무실점. kt 불펜의 최근 성적이다. 김재윤은 벌써 3세이브를 기록하고 있다. 김 감독은 “우리 팀의 자랑스러운 자산이다. 불펜 투수들 굉장히 잘 해주고 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시즌은 길다. kt 불펜 투수들도 크고 작은 고난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재 불펜 전력은 객관적으로 리그 정상급이다. 특히 고무적인 부분은 kt 불펜 투수들의 나이다. 마무리 김재윤은 이제 27세다. 심재민(23), 엄상백(21), 조무근(26) 모두 20대 초중반이다. 장시환도 만30세 투수다. 현재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젊은 불펜이기 때문에 kt의 앞날이 더 밝아 보인다.

● 혼쭐이 날 줄 알았던 포수 김재윤의 변신


kt 불펜 탄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김재윤의 투수 변신이다. 2014년 포수로 kt 지명을 받은 김재윤은 그해 10월 수원구장에서 신인선수들과 훈련 중이었다. 프로텍터를 차고 펑고를 받던 김재윤이 갑자기 그라운드 한쪽에 서 있던 조범현 당시 kt 감독의 호출을 받았다. 최고 포수 교관출신인 감독의 부름, 김재윤은 ‘어떤 부분을 잘못 했을까?’ 잔뜩 긴장하고 감독 앞에 섰다. 그 때 운명 같은 한마디가 들렸다. “재윤아 장비 벗고 마운드 올라가서 공 던져봐.” 얼떨결에 마운드에 올라 포수에게 공을 던졌고, 며칠 후 “재윤아 투수 해볼래? 믿고 한번 해보자. 성공할 수 있다”는 감독의 말을 들었다. 최종 결정은 김재윤의 몫이었다. 그렇게 청소년대표 출신 포수는 투수가 됐고, 리그 정상급 마무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kt 김재윤. 스포츠동아DB
kt 김재윤. 스포츠동아DB

● 140km도 못 던졌던 투수의 변신

조무근은 고교 때 포수였다. 대학 때 투수로 변신했지만 최고 구속이 140km를 넘지 못했다. 2015신인드래프트 2차 6라운드에 가서야 가까스로 지명을 받았다. kt 코칭스태프는 198cm의 큰 키와 다부진 체격에서 희망을 찾았다. 투구 폼 개조가 시작됐고, 140km 후반 공을 던지는 투수로 변신했다. “다른 공 던질 필요 없다. 최고의 슬라이더가 있다. 150km만 던지면 슬라이더, 포심 패스트볼 두 가지로도 타자를 이길 수 있다”는 감독의 분명한 방향 설정은 평범하지도 못했던 투수의 빠른 성장의 계기가 됐다.

kt 조무근. 사진제공|kt wiz
kt 조무근. 사진제공|kt wiz

장시환은 kt의 1군 데뷔 첫 시즌이던 2015년부터 불펜 에이스로 활약했다. 지금은 국가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kt 유니폼을 입기 전까지 ‘만년 유망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시속 150km 안팎의 빠른 공, 낙차 큰 커브, 날카로운 슬러브와 고속 슬라이더를 갖춘 대형 유망주였기 때문에 주위의 기대가 컸다. 그러나 장시환이 주목 받은 순간은 매년 봄 스프링캠프 때가 전부였다. 막상 시즌이 시작되면 소리 없이 1군 무대에서 사라졌다.

장시환은 2015시즌을 앞두고 kt로 이적했다. kt 코칭스태프는 ‘자신감 회복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불펜에서 공을 던지면 감독부터 나서서 감탄사를 외쳤다. “볼넷 내주면 어때, 다음타자 삼진을 잡을 수 있는데”라는 격려, “마음대로 던져봐”라는 믿음으로 장시환은 전혀 다른 투수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kt 장시환. 사진제공|kt wiz
kt 장시환. 사진제공|kt wiz

좌완 심재민과 우완 사이드암 엄상백은 모두 고교시절 최고의 유망주였다. kt에 입단 후에는 고졸 1년차, 2년차 때부터 1군 무대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신체적으로 성장이 완성되며 자신의 강점을 선보이고 있다.

kt 심재민-엄상백(오른쪽). 사진제공|kt wiz
kt 심재민-엄상백(오른쪽). 사진제공|kt wiz

kt가 자랑하는 불펜 투수들은 각각 다른 공을 던지는 것처럼 사연도 제각각이다. 공통점은 전임 사령탑 조범현 감독이 혼신을 다해 완성한 큰 그림이라는 점이다. 초대 감독은 3년간 계약을 끝으로 팀을 떠났지만 재임기간 수 없이 강조했던 정상급 불펜 구축이라는 큰 유산을 남겼고, 그 전력이 선두를 달리는 kt의 큰 힘이 되고 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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