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FC ‘폭풍 영입’ 돈 있냐고요? 벌면 되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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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승격하자마자 ACL 도전 선언 조태룡 대표

단장으로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돌풍을 주도했던 조태룡 강원FC 대표이사가 프로축구에서도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팀 경영을 맡자마자 2부에서 1부로 끌어올린 조 대표는 재정이 열악한 시민구단임에도 팀을 리그 3위로 도약시키기 위해 이근호와 정조국 등 톱스타를 대거 영입하는 혁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단장으로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돌풍을 주도했던 조태룡 강원FC 대표이사가 프로축구에서도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팀 경영을 맡자마자 2부에서 1부로 끌어올린 조 대표는 재정이 열악한 시민구단임에도 팀을 리그 3위로 도약시키기 위해 이근호와 정조국 등 톱스타를 대거 영입하는 혁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많은 이가 놀랐다. 응원을 보내는 사람도 많지만 의구심을 드러낸 축구 팬도 꽤 있다. 어쨌든 관심을 불러 모으는 데는 성공했다. 화제의 진원지는 프로축구 강원FC의 조태룡 대표이사(53)다.

 “클래식(1부 리그) 승격이 결정된 게 지난해 11월 20일. 선수단과 회식을 한 뒤 집에 돌아왔는데 잠이 오지 않더군요. ‘내년 목표를 뭐로 해야 되나’ 하는 고민이 엄습했습니다. 클래식 잔류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아침이 다 돼 결정했죠. 우승을 다툰 전북과 FC서울은 당장 넘지 못해도 그 바로 밑은 노려 보자. 3등만 돼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 진출할 수 있다. 그래, 이걸로 하자고….”

 강원은 K리그에 처음 참가한 2009년(당시는 단일 리그) 15팀 가운데 13위를 한 것을 시작으로 한 번도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2011년에는 꼴찌였다. 승강제 도입 이듬해인 2014년에는 챌린지(2부)로 떨어졌다. 다행히 지난해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성남FC를 꺾고 클래식에 복귀했지만 별 얘깃거리는 아니었다. 승격 팀은 매년 2곳이 나오지만 대부분 클래식 잔류를 목표로 내세우다 이내 강등됐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 구단이 해봤자 별것 아닐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잔류가 목표면 크게 달라질 게 없었겠죠. 승격 자체가 기회인데, 도전하지 않으면 기회는 날아갑니다. 물론 다들 비웃었을 겁니다. 제가 지난해 처음 축구 쪽에 왔을 때부터 그런 분 많았을걸요.”(웃음)

 ACL에 진출하겠다고 말만 앞세웠다면 그저 코미디로 여겨졌을 일이다. 강원FC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지난해 12월 9일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이근호를 필두로 ‘폭풍 영입’을 시작했다. 중국에서 뛰던 수비수 오범석, 일본에서 뛰던 골키퍼 이범영, 올림픽 대표팀 에이스였던 문창진 등이 줄줄이 강원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해 K리그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한 정조국의 합류는 그 절정이다. 최근에는 ‘베트남의 박지성’으로 불리는 쯔엉도 영입했다. 20일도 안 되는 기간에 11명이 강원으로 왔다.

 “ACL을 목표로 했으니 걸맞은 스쿼드(선수단)를 짜야 했습니다. 원칙을 정했어요. 부상 선수가 나와도 전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 지지 않을 것, 그리고 골을 넣어 이길 것. 주위에서는 ‘브라질 등 외국인 선수에게 투자하라’고 하던데 이왕이면 주축 공격수는 국내 선수가 맡는 게 좋을 것 같아 정조국, 이근호 등을 영입했죠. 그래야 팬들이 더 관심을 갖고 ‘로열티’는 덜 나가니까요.”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에이전트 업계는 강원이 영입한 선수들의 이적료와 연봉을 합치면 60억 원이 넘을 것으로 본다. 수준급 외국인 선수도 추가로 불러올 계획이라 돈은 더 들어간다. 기존 선수들의 연봉도 줘야 한다. 일각에서 “수습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의 시각을 갖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진행 중이라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무조건 가능합니다. 지난해 예산이 86억 원이었는데 올해는 클래식에서 뛰니 다른 구단의 전례를 봐도 예산이 두 배는 돼야겠죠. 180억 원 정도면 ACL에 나갈 수 있습니다. 도 예산과 기존 스폰서 강원랜드의 후원금으로 부족하면 나머지는 발로 뛰어 마련할 자신이 있습니다.”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단장 시절의 조태룡 대표(오른쪽). 동아일보DB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단장 시절의 조태룡 대표(오른쪽). 동아일보DB
 조 대표의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는 넥센 히어로즈가 재정난에 허덕이던 2009년부터 단장을 맡아 매출 300억 원대의 규모로 키워 놓은 주역이 바로 그다. 조 대표는 본인이 좋아하는 표현인 ‘화폐’와 인연이 많은 인물이다.

 그의 첫 직장은 동부제강이다. 그는 “전공(연세대 금속공학)으로는 제철·제강업계 진출이 당연했다. 서울에서 일하고 싶어 공장이 오류동에 있는 동부제강을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1992년을 공장에서 보낸 조 대표는 이듬해 본사에서 수출입 업무를 담당했다. 선물, 옵션, 신용장…. 조 대표는 “그때 돈의 흐름과 글로벌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라고 기억했다.

 “당시 연봉이 1800만 원 정도로 적지 않았어요. 어느 날 보니 부족하지는 않아도 저축은 못 하고 있는 거예요. 내 몸값이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누군가 보험 영업을 해 보라고 권했어요. 가족 모두 반대했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어요. 내 몸값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거든요.”

 조 대표가 푸르덴셜생명에 설계사로 입문한 1997년 11월은 외환위기가 한국을 덮친 때였다. 보험 해지가 속출하던 시기에 가입을 권유해야 했다. 그는 “신입 직원끼리 3개월 동안 경쟁했는데 1등을 했다. 이후 7년 동안 매년 회사 기록을 갈아 치웠다. 첫해부터 웬만한 월급쟁이 몇 년 치 연봉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영업직으로 승승장구하던 조 대표는 2004년 관리직으로 옮겨 교보생명, 삼성생명을 거쳤다. 그는 “돈 버는 데 전문가”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돈은 발이 네 개예요. 사람은 두 개죠. 사람이 돈을 따라갈 수는 없어요. 하지만 미션(목표)을 좇다 보면 돈이 덮쳐 옵니다. 글로벌 스포츠인 축구는 중국과 중동 등에서도 인기가 높아 성적만 좋으면 ‘한류 효과’도 크게 누릴 수 있죠. ACL에 진출한다면 비용 대비 효과는 엄청날 겁니다. 이미 돈은 따라오고 있어요. 지난해 138장이던 시즌권 판매량이 벌써 1400장을 넘었습니다. 두고 보세요. 강원은 해낼 겁니다.”

 ‘무모한 도박’ 아니면 ‘담대한 도전’. 2017년 ‘조태룡의 강원’은 어떤 얘기를 만들어 낼까.

이승건기자 why@donga.com
#강원fc#조태룡#a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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