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사이어니스 ‘염소의 저주’는 협박죄?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12월 14일 05시 45분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는 2016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클리블랜드에 승리하며 무려 108년 만에 ‘염소의 저주’를 깨고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는 2016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클리블랜드에 승리하며 무려 108년 만에 ‘염소의 저주’를 깨고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월드시리즈 좌우할 경기 지배력이 없고
당시 저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미적용

올해 메이저리그의 대미를 장식한 사건은 시카고 컵스가 마침내 ‘염소의 저주’를 푼 것이었다. 1승3패로 뒤진 상황에서 월드시리즈를 7차전으로 끌고 가더니 연장 10회 접전 끝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꺾었다. 스코어도 8-7, 케네디 스코어였다. 1908년 이후 108년만의 우승. 마치 108번뇌를 끊어낸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 메이저리그의 저주들

메이저리그 팬이라면 ‘염소의 저주’가 무엇인지 정도는 잘 알 것이다. 1945년 컵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월드시리즈 4차전. 컵스의 광팬이던 빌리 사이어니스가 자신의 애완 염소를 데리고 입장하려 했다. 그런데 악취를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했다. 그러자 사이어니스는 ‘다시는 이곳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를 퍼붓고 리글리필드를 떠났다. 그 때문인지 컵스가 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리기까지 108년의 시간이 걸렸다.

클리블랜드에도 저주가 있다. 바로 ‘와후 추장의 저주’다. 팀의 마스코트인 와후 추장을 희화화해서 생긴 저주다. 그 때문인지 클리블랜드는 1948년 이후 68년간 우승하지 못하고 있다. 그밖에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의 저주’,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블랙삭스의 저주’, 디트로이트의 ‘불타는 차의 저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토마호크의 저주’ 등도 있다.

이런 저주들은 대부분 누군가가 말이나 행동을 통해 해악(害惡)을 고지(告知)하는 형태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 대신 선수나 구단 또는 팬들의 행동을 사후적으로 평가해 저주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컵스의 ‘염소의 저주’는 조금 다르다. 사이어니스가 직접적으로 ‘다시는 이곳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못할 것’이라는 말로 해악을 고지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혹시 협박죄가 성립하진 않을까.

● 협박죄가 성립하려면?

형법은 제283조에서 ‘사람을 협박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협박이란 일반적으로 보아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컵스 팬에게 ‘염소의 저주’와 같은 말이라면 엄청난 공포일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1908년 이후 37년 만에 우승을 노리고 있는데, 우승을 하지 못한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못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 말대로 된다면 공포를 넘어 멘탈 붕괴까지 오지 않았을까.

해악의 고지는 장래에 발생할 사실이나 조건부로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 내용이 반드시 합리적이거나 실현가능한 것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협박죄가 성립하려면 또 하나의 요건이 필요하다. 장차 해악이 발생할 것이라는 고지 이외에 또 하나의 요건, 바로 그 해악의 발생 여부가 행위자의 의사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천재지변의 발생이나 길흉화복의 도래처럼 행위자의 지배 범위를 초월해 발생하는 해악을 고지하는 것은 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

● ‘염소의 저주’는 악담 수준에 불과

‘염소의 저주’는 어떨까. 저주의 말을 퍼부은 사이어니스에게 컵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좌우할 지배력이 있을까. 물론 오랫동안 우승하지 못하면, 선수들의 멘탈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경기력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일부 팬들은 2003년 일어난 ‘바트만 사건’도 ‘염소의 저주’의 영향이라고 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아 사이어니스에게 월드시리즈 진출을 좌우할 지배력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염소의 저주’는 단순한 길흉화복의 도래라는 의미에 불과하다. 입장을 거부당한 사이어니스가 흥분해서 악담을 퍼부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 사이어니스가 ‘염소의 저주’를 말할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저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 오래도록 우승을 하지 못하다 보니 후세에 그것이 저주로 평가된 것이 아닐까. ‘염소의 저주’는 스포츠에 스토리를 더해 흥미를 더하려는 노력이라고 보는 것이 상당해 보인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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