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제주도 ‘김응룡 필드’ …코끼리가 전해온 뜻밖의 선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8월 12일 05시 30분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김응룡 필드’가 만들어지고 있다. 김응룡 전 감독(한 가운데)이 ‘김응룡 필드’를 짓는 데 도움을 준 제주도 지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김응룡 필드’가 만들어지고 있다. 김응룡 전 감독(한 가운데)이 ‘김응룡 필드’를 짓는 데 도움을 준 제주도 지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니, 그거 완공 때까지는 제발 소문 좀 내지 말라고 했는데…. 아무튼 그렇게 됐수다.”

제주도에 ‘김응룡 필드’가 착공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현역 감독 시절 “은퇴 후엔 야구장이나 지어서 어린애들하고 노는 게 소원이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가 칠순이 훌쩍 넘은 나이(75)에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아니, 누가 그럽디까? 괜히 떠들고 그러면 안 되는데. 나야 돈 조금 보탰을 뿐이고, 제주도 지인들이 도와줘서 지을 수 있게 됐지. 허허.” 쑥스러운 목소리, 겸연쩍은 웃음. 좀체 잘난 척하지 않는 그의 투박한 말투는 여전하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천혜의 관광지 성산일출봉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김응룡 필드’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미 허가를 얻어 7월에 착공했고, 내년 2월이면 완공될 예정이다. 1만평 부지에 천연잔디 야구장 1개면과 실내연습장, 펜션 등이 들어선다. 현재 부지에 심어져 있는 조경수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등 기초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리틀야구나 초, 중, 고, 대학팀이 전지훈련을 하면 좋을 만한 야구장을 지으려고 해요. 학생들이 해외전지훈련 대신 제주도에서 훈련하면 좋잖아. 평소엔 사회인야구팀이 사용해도 되고. 그래서 이왕 야구장 만드는 김에 실내훈련장하고 숙박시설도 함께 짓자고 했지.”

당초 그는 해태 감독 시절 사둔 경기도 용인의 사유지에 야구장을 지으려고 했다. 야산에 텃밭을 만들어 은퇴 후에 수박과 토마토, 고추, 오이 등을 직접 심어 키우던 곳이었다. 그러나 백방으로 뛰며 당국의 허가까지 얻어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야구장 건설은 무산됐다. 텃밭 인근에 도로가 나고, 주택이 들어서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결국 제주도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 이번에 성산에 야구장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김응룡 필드’는 7월에 착공돼 기초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부지에 있던 조경수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되고 있다.
‘김응룡 필드’는 7월에 착공돼 기초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부지에 있던 조경수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되고 있다.

‘김응룡 필드’가 들어선다고 하니 지역민들도 좋아하고 있다. 스포츠와 관광을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도의원과 읍장들까지 나서서 도움도 줬다. 그가 야구장을 만들어 뜻밖의 선물을 하자, 지역에서는 유소년야구팀을 창단하겠다며 화답했다.

‘김응룡 필드’가 들어서는 데 힘을 보탠 제주도의 지인은 “김응룡 감독님이 금전적으로 기부도 많이 하시고, 여러 가지 도움을 주셨다. 그동안 선동열 유승안 김성한 양승호 감독님 등 해태 시절 제자들이 몇 번 방문했다. 주민들이 유명 야구인들이 올 때마다 사인을 받으러 몰려오곤 한다”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선동열 전 감독 등은 스승의 이름을 딴 야구장이 지어진다고 하니 직접 제주도까지 날아와 야구장의 방향과 실내훈련장 건립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유승안 경찰야구단 감독은 “경찰야구단이라 장기간은 어렵지만 짧게는 전지훈련을 하러 올 수 있다”고 약속했고, 광주시생활체육야구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김성한 전 KIA 감독도 “광주지역 사회인야구팀만 100개 정도 되는데, 장흥에서 배를 타고 성산포항까지 얼마 안 걸린다. 사회인야구팀 전지훈련도 하고 경기도 할 수 있도록 추진해 보겠다”고 거들었다.

내년 2월 완공 예정인 ‘김응룡 필드’의 조감도. 1만평 부지에 천연잔디 야구장 1개면과 실내훈련장, 펜션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내년 2월 완공 예정인 ‘김응룡 필드’의 조감도. 1만평 부지에 천연잔디 야구장 1개면과 실내훈련장, 펜션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해 올스타전 때 후배 감독들이 만들어준 ‘은퇴식’으로 인해 이젠 영원히 사령탑에서 물러나게 된 ‘코끼리 감독’.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편하게 여생을 즐길 법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바쁘다.

“불러주는 데는 없지만 갈 데는 많아. 허허. 지금도 목동구장에서 모교 개성고등학교(옛 부산상고) 게임(봉황대기전국고교야구대회)이 있다고 해서 가는 길이지. 내일 모레 내 나이 팔십이요. 야구로 얻은 거 이제 야구에 돌려드려야 하지 않겠소. 제주도에 야구장이 지어지면 애들하고 슬슬 놀면서 야구나 가르쳐줘야지.”

최근 선수들의 일탈행위와 승부조작 등으로 야구에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응룡 필드’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은 작은 희망의 촛불이 되고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탱해주는 삼각대처럼, 그는 묵묵히 야구의 텃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있다. 승부사로서는 전설의 문을 닫았지만, ‘코끼리 감독’은 투박한 그 손으로 야구발전을 위한 또 다른 희망의 문을 열고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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