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볼 브레이크] 첼시 리 사건의 교훈 ‘욕심이 빚은 인재’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6월 17일 05시 45분


첼시리(왼쪽). 사진제공|WKBL
첼시리(왼쪽). 사진제공|WKBL
성적 급급한 KEB하나, 검증 등한시
연맹, 선수층 확대만 생각하다 망신


첼시 리(27·사진)의 출생증명서 위조가 사실로 밝혀지면서 한국농구는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위조서류 하나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채 해외동포선수 자격을 부여하고, 한 시즌을 뛰도록 했다. 그런 선수를 특별귀화 대상으로까지 추천했다. 지난해 첼시 리의 가족사에 적지 않은 의문점이 제기됐지만, KEB하나은행과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증빙서류 보강 등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단과 WKBL이 선수와 에이전트의 거짓말에 속은 것으로 판명됐다. ‘욕심이 빚어낸 인재’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공신력 있는 검증을 못한 KEB하나은행

KEB하나은행이 지난해 첼시 리를 국내선수 자격으로 등록하려하자 반발이 거셌다. 첼시 리와 먼저 접촉했던 신한은행, KB스타즈 등은 증빙서류 추가 검증을 요구했다. 신한은행과 KB스타즈는 KEB하나은행에 앞서 첼시 리의 에이전트와 접촉했다. 신한은행에는 첼시 리의 증조모가 한국인이라고 소개됐다. KB스타즈는 아버지가 한국인이라고 들었다. 말이 바뀌었다. 게다가 증빙서류에는 첼시 리 아버지의 미국 사회보장번호(한국의 주민등록번호 역할)가 적혀있지 않았다. 결국 두 구단은 영입을 포기했다.

KEB하나은행이 선수등록을 추진하자 두 구단을 포함한 나머지 5개 구단이 이의를 제기했다. WKBL 이사회에서 “증빙서류를 보강해야 한다”고 의결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KEB하나은행은 이사회에 탐정을 고용해 검증하겠다고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관계증명서로 모든 것이 명확해지지만, 이 과정을 거치는 대신 사설기관의 탐정을 이용했다. 검찰 수사 결과 첼시 리의 아버지 L씨는 실존 인물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좋은 선수를 데려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 탓일까. 공신력을 갖춘 기관을 통해 서류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지 않은 실수에 대해선 KEB하나은행도 자유로울 수 없다.

선수층 확대·국제경쟁력 강화만 본 WKBL

WKBL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여러 구단이 “첼시 리에게 해외동포선수 자격을 주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WKBL 관계자는 “시즌 개막 이전에 첼시 리의 등록 서류가 보강됐고, 전혀 문제가 없다. 변호사 공증까지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에선 서류 위조가 드러났다.

WKBL이 해외동포선수제도를 도입한 것은 국내의 열악한 선수수급 상황 때문이었다. 초중고 팀들이 점차 줄어들고, 좋은 기량을 지닌 유망주들이 자주 배출되지 않아 전체적인 여자농구 수준의 하락이 우려됐다. 이에 부모나 조부모가 한국인인 교포 2세 또는 3세들이 국내선수 자격을 획득해 국내서 뛸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이들 중 기량이 좋은 선수가 있다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하고, 대표선수로 출전시켜 국제경쟁력 강화까지 이어간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큰 화를 자초한 꼴이 됐다. WKBL은 15일 검찰의 발표 이후 재발방지와 함께 제도 재검토, 서류 검증 절차 강화 등을 약속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비난만 증폭시킨 사후처방에 불과하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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