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빨래하는 국가대표’ 농구대표팀의 현주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9월 26일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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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농구대표팀. 사진제공|대한농구협회
남자농구대표팀. 사진제공|대한농구협회
농구협회 예산부족, 선수들에게 고스란히 피해
세탁비 지원 없어 24일까지 유니폼 손빨래
최악의 지원 속에 ‘국가대표 자부심’만 강요


중국 창사에서 열리고 있는 ‘2015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 출전 중인 한국남자농구대표팀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대한농구협회의 빈약한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선수들의 수당이 지난해와 비교할 때 반 토막이 났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문제는 기본적인 지원도 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협회는 수년간 운영비 부족을 토로하고 있지만, 대표팀 스폰서를 구하거나 수입을 늘리기 위한 움직임은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그 피해는 선수들에게 돌아갔다.

● 욕실에서 빨래하는 국가대표

대표팀 선수들은 기본적인 생활 여건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대회를 치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빨래다. 지난 21일 출국한 대표팀은 주최 측에서 제공한 호텔에서 생활하고 있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수건은 호텔에서 무료로 세탁을 해주지만 유니폼, 연습복 등은 세탁비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운영비 부족을 이유로 대표팀에 세탁비가 지원되지 않았다. 빨래는 선수들의 몫이 됐다. 막내급 선수들은 욕조에 물을 받아 세제를 풀어 유니폼과 연습복을 발로 밟고 손으로 비벼서 빨래를 해야만 했다. 고참 선수들이 ‘기본적인 지원은 해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24일부터 세탁비 지원이 이뤄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수는 “90년대에도 손으로 빨래를 하지는 않았다고 들었는데…. 솔직히 빨래를 하면서 ‘내가 뭐하고 있는건가’ 싶었다”고 말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국가대표 선수 중 신장 2m 이상의 선수들은 비행기 탑승 시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협회에게는 운영비 부담이 됐던 모양이다. 협회는 최준용(연세대)과 강상재(고려대)의 신장을 199cm로 표기했고 이들은 이코노미 클래스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이번 대회 프로필에 기재된 최준용과 강상재의 신장은 모두 2m다. 2013년 필리핀대회 때 대표팀 멤버였던 최준용은 당시 비즈니스 클래스를 탔었다. 2013년은 대표팀이 KBL의 지원을 받을 때다.

● 협회의 포장지가 된 국가대표 자부심


이런 상황에서도 협회와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에게 ‘국가대표의 자부심’만을 강조하고 있다. 대표팀 선수 대부분은 어린시절 국가대표 선수의 꿈을 키워오며 자랐다. 25살에 국가대표가 된 양동근(34·모비스)은 34세가 된 지금까지 자부심하나로 매년 여름 대표팀에 헌신했으며 지난해 아시안게임 후유증으로 무릎 수술을 했던 조성민(32·KT) 역시 기꺼이 대표팀의 부름에 응했다. 그러나 대표팀의 현실은 동경했던 국가대표의 꿈을 이룬 선수들에게 허탈한 한숨만 짓게 할 뿐이다.

대표팀의 한 선수는 “과거에도 대표팀 지원이 열악할 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너무하다. 기본적인 것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나라를 대표한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자부심을 어디서 느껴야 하는가”라고 한탄했다.

기본적인 지원조차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서 ‘국가대표 자부심’은 협회의 무능함을 감싸는 포장지로 전락해버렸다.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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