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토피아] 맞기 위해 던지는 피칭…불혹 투수들의 ‘장수 비결’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5월 4일 05시 45분


송신영-서재응-최영필-손민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송신영-서재응-최영필-손민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가장 중요한 건 부드러움…근육 부상 예방
몸·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도 중요
절제·관리 필수적…반복되는 ‘루틴’ 도움

5월 첫 주말 3연전에서 가장 빛난 선수는 넥센 송신영과 KIA 서재응, 최영필 등 베테랑 투수들이었다. 1977년생 송신영은 선발로 전환한 이후 3연승에 방어율 0.92를 기록하며 ‘회춘’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비록 승리는 없지만 동갑 서재응도 여전히 선발로테이션에 큰 역할을 했다. 41세의 최영필은 중간계투로 2승을 따냈다.

KBO리그 역사에서 선수의 부가가치가 지금처럼 컸던 적은 없었다. 예전 같으면 이미 용도폐기를 당했을 선수들이 현역으로 버틴다. 우리 사회도 갈수록 기대수명이 길어지고 있다. 어지간한 선수는 40세까지 야구를 하는 일이 보통인 때가 차츰 다가온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장수하는 선수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 타고난 유전자의 힘을 무시하지 못한다!

20년간 던지며 투수 부문 통산기록 대부분을 보유한 송진우(49) KBSN스포츠 해설위원에 따르면, 장수 투수는 타고나야 한다. 오래 선수생활의 비결에 대해 “좋은 몸을 물려주신 부모님 덕분”이라고 밝혔다. 그것은 축복이다. 잠수함투수로서 16시즌 동안 2200이닝 이상을 던진 이강철(49) 넥센 수석코치는 “몸이 유연해야 오래 야구한다”고 말했다.

야구는 힘과 기술이 결합된 경기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른 레너트 코페트 기자는 “과학과 스포츠 예술의 경계선에 야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젊은 선수처럼 힘은 없어도 베테랑의 특전인 경험과 센스 등을 갖추면 젊음에 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야구의 특징이다. 이때 꼭 필요한 것은 부드러움이다. 일반인보다는 강한 체력이 필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드러움이다. 회전력으로 공을 던졌던 이강철 코치는 “몸이 부드러워야 근육에 무리가 생기지 않는다. 근육이 끊어지거나 다치면 끝”이라고 설명했다.

기억해보면 그와 함께 해태 마운드를 완성했던 선동열(52), 김정수(53), 조계현(51) 등은 모두 유연성이 뛰어났다. 김정수는 현역을 18년간 했고, 고교시절 그렇게 혹사당했다던 조계현도 14시즌을 던졌다. 역대 최고로 부드러운 몸을 지녔다는 선동열은 한일통산 15시즌을 던졌다. 36세에 현역을 더 할 수 있는데도 그만뒀다. 조계현은 현역시절 골밀도 검사에서 동료나 후배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받았다. 한마디로 통뼈였다. 이런 DNA를 가진 선수는 장수한다.

● 맞기 위해 던지는 기술과 컨트롤이 오랜 선수생활을 보장한다!

요즘 송신영의 피칭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넣었다 뺐다’다. 스트라이크존 바깥에서 걸치는 공으로 타자를 상대한다. 홈플레이트 언저리 부근에서 안으로 넣었다, 밖으로 뺐다 하면서 타자가 치게 만든다.

투수의 가장 큰 목적은 타자가 치게 만드는 것이다. 야구라는 게임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투수의 역할이 그랬다. 갈수록 근육을 키우고, 방망이까지 든 타자를 무서워한 투수들은 배트에 스치지도 않을 마구를 꿈꾸지만 그런 공은 없다. 피칭 기술의 기본은 타자가 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등 뒤에 있는 7명 야수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40세에 선발로 활약하는 NC 손민한, 송신영이 돋보이는 것은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 투구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나이 탓에 한계투구수가 떨어지지만, 이들은 오랜 이닝을 버티기 위해 공을 아낀다. 이른 볼카운트에서 타자가 치도록 공을 던져 파울을 유도하거나 범타를 만들어낸다. 5회를 마치기 전에 100개 가까이 공을 던지는 젊은 투수들이 벤치마킹해야 할 투구기술이다. 물론 이런 공을 던지려면 기본으로 갖춰야 할 것이 컨트롤이다. 젊었을 때는 스피드만으로도 버틸 수 있지만, 오래 던지고 싶다면 컨트롤과 좋은 투구폼이 필수다.

이강철 코치는 “이상하게 던지는 투수치고 오래 야구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폼이 좋아야 부상이 없다. 부상은 선수의 수명을 단축하는 주범이다. 그래서 “슈퍼스타는 부상이 없다”는 메이저리그의 격언도 있다. 이효봉 SKY스포츠 해설위원은 ”다치면 비운의 스타, 안 다치면 슈퍼스타“라고 촌평했다.

● 변화를 받아들이고 빨리 적응해야 오래 버틴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은 변하는데 그 흐름에 잘 따라가는 종족만이 지구상에 살아남았다. 선수의 몸은 나이, 야구환경 또는 팀의 필요에 따라 변화를 요구받는다. 이를 얼마나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느냐가 생명연장의 키워드다.

기자는 송진우의 프로 데뷔전을 취재했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1988서울올림픽을 위해 1년간 프로 진출을 유보한 뒤 1989년 빙그레 유니폼을 입은 송진우는 당시 빠른 공을 가졌지만 컨트롤은 불안한 투수였다. 그해 해태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컨트롤 불안 증세 때문에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한 적도 있다. 뒤에서 짧게 던지는 투구폼이었는데, 아쉬운 점은 있었다.

물론 송진우는 차츰 피칭 기술을 업그레이드시켰다. 폼도 바꿨고, 직구와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에서 나이를 먹으면서 스피드가 떨어지자 체인지업을 추가했다.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생존했다. 오래 던지다보니 투수가 누릴 모든 것을 얻었다. 강한 자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자가 강한 것이다. 넥센 염경엽 감독이 송신영에게 선발 자리를 준 것도 다양한 공을 던지는 능력을 믿어서였다.

● 절제와 관리는 장수의 기본이다!

장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몸을 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항상 어떤 일을 즐겁게 한다. 야구도 스포츠의 일종인지라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해야 한다. 당연히 힘들다. 그 힘든 것을 어떻게 잘 참아내느냐가 중요하다. 부자연스러운 동작이 반복되면서 균형이 무너지고 무리가 생긴 몸을 얼마나 잘 보강해주느냐가 장수의 중요 요소다.

보강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20세기 야구인들은 러닝을 꼽았고, 21세기에는 웨이트트레이닝을 보약으로 여긴다. 한화 김성근 감독은 구도 기미야쓰(52·소프트뱅크 감독)의 사례를 들려줬다. “구도는 베테랑 때도 스프링캠프에선 매일 홀로 5km를 뛰고 훈련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금지약물에 퇴색됐지만, 로저 클레멘스도 워크홀릭이다. “경기에 등판하는 날을 빼고 나를 만나려면 웨이트트레이닝 룸으로 오라”고 했다.

여기에 또 하나 갖춰야 할 것이 ‘루틴’이다. 스즈키 이치로(42·마이애미)는 시애틀 시절 7년간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한 것으로 유명하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아침을 먹고, 같은 패턴으로 경기를 준비했다. 뉴욕 양키스 마리아노 리베라(46)도 1997년 소방수로 고정된 이후 은퇴할 때까지 매일 경기장에서 같은 루틴을 했다. 이 같은 절제와 자기관리는 장수의 중요한 버팀목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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