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기자의 여기는 오키나와] 김기태 감독은 단 1초도 쉬지 않는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2월 5일 06시 40분


한 명의 리더가 전체 분위기를 바꿨다. KIA 김기태 감독은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솔선수범하며 선수단을 이끌고 있다. 여기에 선후배간의 예의, 팀을 우선시하는 원칙 등을 엄격하게 적용하며 팀 컬러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한 명의 리더가 전체 분위기를 바꿨다. KIA 김기태 감독은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솔선수범하며 선수단을 이끌고 있다. 여기에 선후배간의 예의, 팀을 우선시하는 원칙 등을 엄격하게 적용하며 팀 컬러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 KIA를 바꾼 김기태 감독의 리더십

선수와 똑같이 훈련…식사도 가장 늦게
강요 없는 솔선수범, 선수들 자발 참여
예의·배짱…프로다운 프라이드 강조
회식도 훈련보조원부터…속 깊은 배려

단 한 명의 리더가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기자라는 직업은 관찰하고, 설명하는 직업일 텐데 KIA의 오키나와 캠프는 언어로 풀어쓰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다. 6박7일간 오키나와 킨구장을 드나들며 생긴 가장 큰 궁금증은 ‘자발성의 원천’이었다. 일례로 KIA 고참 내야수 김민우는 허리가 아파서 훈련을 며칠 쉬었다. 마침 KIA는 시뮬레이션 배팅 훈련에 돌입했다. 파울볼이 구장 밖이나 관중석으로 날아갈 때마다 벤치에 선 채로 보고 있던 김민우는 바로 뛰어나갔다. 아무도 안 시켰다. 훈련보조요원이나 구단직원이 주워올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 기자는 김기태 감독의 무엇이 선수들을 움직이게 하는지 딱 떨어지는 답을 찾진 못했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단서들은 몇 가지 포착했다.

● 솔선수범

KIA 최희섭은 “감독님이 훈련 때 1초라도 앉아계신 모습 본 적 있느냐?”고 반문했다. 킨구장에서 김 감독은 코치들과 거의 똑같이 움직였다. 펑고를 쳐주고, 끝까지 토스배팅볼을 올렸다. 점심식사는 가장 늦게 먹었다. 그냥 보기만 하고 오는 한이 있어도 투수훈련장도 찾는다. 여기서 김 감독의 독특한 점은 ‘내가 이렇게 앞장서니 너희들도 잔말 말고 따라오라’는 리더십이 아니라는 데 있다. 솔선수범을 할 뿐, 복종을 강요하지 않는다. 선수들은 카리스마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감화가 됐기에 자발적으로 김 감독을 따라간다. 김 감독은 선수단 미팅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3월(개막 전)까지는 이렇게 앞장 설 것이다. 4월(개막)부터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해주길 바란다.”

● 프라이드

KIA 강한울은 훈련 중 무심코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지적을 받았다. 김 감독은 “나는 지금과 같은 한울이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고 조용히 말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한 강한울은 처음 자리로 뛰어가더니 뛰어서 돌아왔다. KIA 나지완은 괌 재활캠프에서 돌아온 첫날부터 혼이 났다. 숙소에서 선배들을 만나서 반가운 나머지 무심코 양복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히 이 장면을 봤던 김 감독은 나지완이 아니라 곁에 있던 캡틴 이범호를 질책했다. 김 감독은 야구에 대한 예의에 집착한다. 실수해도 고개 숙이지 않는 배포를 원한다. 품격을 갖춘 선수는 역경에 처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근본을 이룬다. KIA의 혁신은 선수단의 마인드 개조가 시작점이다. 그 시작점의 지향은 ‘팀 퍼스트’다.

● 배려

KIA는 원칙적으로 훈련 중 인터뷰가 금지다. 덕분에 그냥 지켜보는 시간이 많았다. 김 감독은 훈련 중 짬을 내 “담배 피우러 갑시다”며 비흡연자인 기자를 자꾸 밖으로 불렀다. 약식 인터뷰가 이뤄진 셈이다. 김 감독이 골초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원칙 안에서 기자를 배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주전부터 이름조차 잘 모르는 신고선수까지 김 감독의 토스배팅볼은 평등하다. 고참급들이 “오키나와에서 감독님이 밥 한번 안 사주셨다”고 보채지만 김 감독은 훈련보조원 회식부터 챙겨줬다.

● 아직 남은 숙제

KIA에 김기태 철학이 성공적으로 입혀지고 있다. 선수들 얼굴이 밝아졌다. 이제 관건은 야구 기술 자체다. 김 감독은 “방어율과 득점권 타율”을 화두로 설정하고 있다. 이것은 실전을 통해 배양될 요소일 것이다. 김 감독이 “나도 말해주고 싶다”고 고백할 정도로 내야 키스톤이나 불펜 조각은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캠프 분위기만 보고, 섣불리 낙관론을 운운할 순 없다. 다만 ‘오직 팀으로서 싸울 때 길이 있다’는 김 감독의 방향성을 팀 구성원 전체가 공감하는 현실은 한줄기 희망이다.

오키나와(일본)|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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