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사람들] “다시는 페널티킥 차지 말거라” 어머니의 유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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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나대표 기안의 ‘실축 트라우마’


“다시는 페널티킥을 차지 말거라.”

2010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가나와 우루과이의 8강전 연장 후반. 1-1 동점 상황에서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던 가나의 슈팅을 우루과이의 수아레스가 손으로 막았다. ‘악동’ 수아레스가 유명한 ‘신의 손’ 사건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수아레스는 퇴장당하고 가나가 천금 같은 페널티킥 기회를 잡았다. 키커로 나선 아사모아 기안(29)은 조별리그에서 넣은 3골 중 2골을 페널티킥으로 넣은 페널티킥 명수였다. 그러나 힘차게 날린 슛은 골대를 강타했다. 그 순간 수아레스는 펄쩍 뛰며 환호했고 TV를 통해 이를 본 세계 축구팬들은 수아레스의 매너 없는 행동에 분개했다. 결국 가나는 승부차기에서 2-4로 져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기안은 이후 국제대회에서 연달아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2012년 별세한 모친은 오죽했으면 기안에게 “다시는 페널티킥을 차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극심한 페널티킥 스트레스 속에 은퇴했던 기안은 페널티킥을 차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번 가나 월드컵 대표팀에 다시 합류했다.

월드컵에서는 페널티킥 한 방으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다른 대회보다 더 큰 중압감에 시달리는 수비수들이 다급한 마음에 파울을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페널티킥에서는 키커가 골키퍼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키커와 골대까지의 거리는 11m. 가로 7.32m의 넓은 공간이 키커를 향해 활짝 열려 있다. 공을 차는 순간부터 0.4∼0.5초 이내에 공이 골대를 통과한다. 골키퍼의 반응속도는 0.6초 정도. 통계적으로는 키커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킬 확률을 80%로 보고 있다.

리버풀 존무어대 연구진은 첨단 카메라기법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 100% 성공할 수 있는 페널티킥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16m 앞에서 5, 6발자국의 도움닫기에 이어 공의 속도가 시속 104km 이상, 20∼30도의 각도로 슈팅을 날리는 것이다. 이때 크로스바와 기둥 안쪽 50cm 지점으로 공이 날아가게 되고, 골키퍼가 이를 막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페널티킥은 확률로 따지기 힘든 면이 있다. 바로 키커와 골키퍼와의 심리 싸움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골키퍼는 미리 방향을 예측해 키커가 차는 순간 몸을 던져 막는다. 지나치게 긴장한 키커는 골대 밖으로 공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보통 키커가 페널티킥을 차기 전 심리적인 중압감을 이겨내느냐, 그러지 못하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뛰었던 공격수 김도훈(은퇴)은 “골키퍼는 페널티킥을 막지 못해도 ‘밑져야 본전’이지만 키커는 그렇지 않다. 무조건 넣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국 엑스터대의 심리학 연구팀은 키커들은 골키퍼를 무시하고 오로지 공을 어디로 보낼 것인지에만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키커의 눈 움직임을 추적한 결과 골키퍼에게 시선을 오래 둘수록 불안감이 높아져 킥의 정확성이 떨어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의 골문을 책임졌던 이운재(은퇴)는 “공을 차는 키커는 움직이지 않는 골키퍼를 더 무서워한다. 페널티킥 때 슈팅이 향하는 방향으로 골키퍼의 몸이 날아가면 다음 키커는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홍명보호의 수문장인 이범영(부산)은 “페널티킥은 심리전이다. 상대의 주의를 끌든지 자극하든지 어떻게든 집중력을 흐리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골키퍼 김승규(울산)의 경우 소리를 지르면서 팔다리를 마구 흔들며 키커의 실수를 유도하기도 한다.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은 28골을 터뜨렸다. 페널티킥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미국과의 경기에서 이을용이 전반 39분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안정환(은퇴)은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페널티킥 키커로 나섰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역대 A매치 한 경기 최다 페널티킥 실축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대표로 뛰었던 마르틴 팔레르모(은퇴)가 가지고 있다. 팔레르모는 1999년 남미 선수권 C조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세 번이나 페널티킥을 찼으나 모두 실축했다.

페널티킥과 비슷한 승부차기에서 잉글랜드만큼 악몽을 겪은 나라는 없다. 잉글랜드는 1990년 이탈리아, 1998년 프랑스, 2006년 독일 월드컵 등 세 번의 월드컵 승부차기에서 모두 패한 기록을 갖고 있다. 반면 독일은 월드컵에서 4번의 승부차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아사모아 기안#가나#수아레스#페널티킥#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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