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헌재]‘제2의 안현수’ 또 나올수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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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2014 위대한 도전]

이헌재 기자
이헌재 기자
“빅토르 안, 러시아, 빅토르 안!”

소치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가 열린 10일(현지 시간)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는 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를 연호하는 러시아 관중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는 이날 경기에서 전성기 못지않은 스케이팅 기술을 뽐내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딴 뒤 8년 만의 올림픽 메달이었다.

안현수는 러시아 국기를 어깨에 두르고 빙판을 돌며 관중들의 환호에 답했다. 이전까지 이 종목에서 한 개의 메달도 없었던 러시아에 안현수는 굴러들어온 복덩이다. 반면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던 한국 남자 쇼트트랙은 이날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한국 팬들은 한국선수들의 부진을 아쉬워하면서도 안현수의 극적인 부활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안현수=피해자’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안현수가 한국을 떠나 귀화를 결심한 것은 운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개인의 판단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쇼트트랙 황제로 군림하던 안현수는 2008년 무릎 부상을 당한 뒤 몇 년간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대표 선발전에서 번번이 탈락하면서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 나가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속팀 성남시청마저 재정난을 이유로 해체되면서 갈 곳을 잃었다. 부상과 부진, 그리고 적지 않은 몸값까지 그를 감당할 실업팀은 많지 않았다. 때마침 소치 올림픽을 유치한 러시아가 그에게 귀화를 제안했고, 안현수는 러시아행을 택했다. 그의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안현수를 놓친 데는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 시스템도 한 가지 이유가 된다. 모든 게 빨리 돌아가야 하는 한국에서는 빠른 시간 내에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곧바로 도태된다. 하지만 러시아는 인내를 갖고 각종 지원을 해주며 안현수의 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소치 올림픽에서 사상 첫 쇼트트랙 메달이라는 화려한 꽃을 피우게 했다.

쇼트트랙과 관계된 감독과 코치, 선수 등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다. “만약 안현수가 한국에 계속 있었더라면 재기할 수 있었겠느냐”고. 모든 사람이 “절대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치열한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 스포츠는 얇은 선수 층에도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성과를 이뤄 왔다. 하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못 내면 거침없이 버려지고, 한 번 실패하면 영원히 패자가 되어 버리는 현 시스템에서는 제2, 제3의 안현수가 언제든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소치=이헌재·스포츠부 uni@donga.com
#안현수#빅토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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