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 좌우하는 ‘세터놀음’…속 끓고 도 닦는 감독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3년 12월 27일 07시 00분


■ 프로배구 감독과 세터의 복잡 미묘한 관계

믿거나 간섭하거나…지도 스타일 각양각색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 입맛 맞는 세터 발굴
대한항공 김종민 감독 기 살려주며 지켜보기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 경기 내내 작전지시


많은 일본인들이 아는 새가 있다. 울지 않는 두견새다. 일본 전국시대를 이끌었던 3명의 리더를 얘기할 때 비유로 쓰인다. 울어야 하는 두견새가 울지 않는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3명의 행동이 달랐다.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 따위는 필요 없다”며 단칼에 죽여 버렸다. 실용성과 현재를 중하게 여기는 결단력이 드러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가 울지 않으면 울도록 만들면 된다”고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뤄내는 인간형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그 인내 덕분에 최후의 승자가 됐다.

배구를 세터놀음이라고 한다. 감독을 대신해 코트에서 동료를 이끄는 세터의 역량에 따라 팀의 운명이 갈린다. 감독이 지시를 내리지만 실행하는 사람은 세터다. 소신 없이 감독의 말대로 따라만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지시를 거부해도 안 되는 자리다. V리그 남자부 감독과 세터의 복잡한 관계를 울지 않는 두견새에 비유해봤다.

● 새가 울지 않으면 찾아내고 만들어낸다

한국전력은 시즌을 앞두고 세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신인왕 출신의 양준식이 있었지만 새로 부임한 신영철 감독 눈에는 차지 않았다. 계속 새로운 세터를 찾았다. LIG손해보험에서 김영래가 임의탈퇴로 나왔다. 영입을 원했으나 요구조건이 맞지 않았다. KOVO컵 첫 경기에서 지고난 뒤에야 간신히 LIG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신 감독의 선택은 김영래가 아닌 3년차 김정석이었다. 수련선수 출신으로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신 감독은 빠른 토스에서 가능성을 봤다. 선수가 없으면 찾아내거나 만들면 된다. 지금 한전은 세터 때문에 고민하지 않는다.

● 울지 않는 새는 쳐다보지 않지만 기다린다

대한항공은 이번 시즌 세터 때문에 가장 많이 애를 태웠다. 한선수의 공백을 새삼 느낀다. 대체요원으로 황동일을 선택했지만 1라운드에서 보여준 기량은 미달이었다. 2라운드 때도 기회를 줬지만 결과가 나빴다. 그래서 김종민 감독은 백광언을 선택했다. 물론 황동일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감독은 “우리 팀이 이기는 배구를 하기 위해서는 (황)동일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풀죽은 세터의 기를 살리기 위한 배려인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김 감독만이 안다. 지금도 대한항공의 주전세터 경쟁은 진행형이다. 김 감독은 여전히 기다린다.

● 울 줄 아는 새가 이해할 때까지 계속 얘기한다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은 경기 내내 세터에게 지시를 내린다. 두 명의 국가대표급 베테랑 세터를 데리고 있지만 눈에 차지 않는다. 자신의 선수시절이 더 화려했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어렵게 가려고 할 때 김 감독의 목소리 톤은 높아진다. 라이트 아가메즈의 위력을 높여주기 위해서라도 센터와 레프트의 사용방법에 대해 김 감독은 요구사항이 많다. “세터는 때가 있다. 특정 상황에서는 반드시 어떤 것을 해야 하는 때가 있는데 베테랑도 가끔 그것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계속 알려준다”고 김 감독은 말한다.

● 울지 않는 새도 내 새다. 내가 쓰기 나름이다

우리카드 강만수 감독은 경기 도중 선수들을 잘 혼내지 않는다. 작전지시도 많지 않다. 그런 지시는 훈련 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경기 때 이것저것 주문해봐야 준비가 안 된 선수에게는 들리지 않을 뿐더러 역효과가 난다고 믿는다. 세터 김광국과 송병일의 특징이 달라 상황에 따라 세터를 쓴다. 김광국은 빠른 공격을 잘하고, 국내파와 호흡이 좋다. 송병일은 장신의 이점이 크고 루니와 호흡이 좋다. 둘의 장점을 합치면 최고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때는 현실을 인정하고 나눠 쓰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 LIG손해보험의 문용관 감독도 울지 않는 새를 한탄하기 보다는 모두(권준형, 이효동)를 품어 안았다. 울어도 안 울어도 모두 내 새라는 생각이다.

● 우는 새를 가졌지만 그래도 경계하고 준비한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과 러시앤캐시 김세진 감독은 그런 면에서 복을 받았다. 안정된 주전세터 유광우와 이민규가 있기에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이들이 마음대로 경기를 주무르게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김세진 감독은 “훈련 때 가장 혼을 많이 내는 선수가 이민규다. 정석을 벗어나서 본인이 헷갈리면 팀이 무너질 수 있기에 가장 자주 혼내고 얘기한다”고 했다. 신치용 감독은 유광우의 발목을 항상 걱정 어린 눈으로 본다. 수술 후유증으로 통증을 안고 살아야 하는 유광우다. 일주일에 한 번씩 힘든 주사를 맞아야 하고 특히 날이 흐리면 통증을 참고 뛰어야 하기에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그래도 신 감독과 김 감독은 세터에 대한 믿음이 있다. 유광우가 수술 후유증으로 재기여부가 불투명할 때 “안 되면 구단 프런트라도 쓴다”며 신뢰를 줬던 신 감독이다. 김 감독은 “저 나이에 저렇게 하는 세터가 어디 있냐”며 이민규의 역량을 믿고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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