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배구월드리그의 이면 ‘기대는 크고 지원은 없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3년 6월 14일 15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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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월드배구리그 대륙간라운드 3주차 캐나다 원정을 위해 대표팀이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것은 한국시간으로 12일 수요일 오전 10시였다. 주말 핀란드전 동안 수원 숙소에서 지내던 대표팀은 토론토 출발을 위해 이날 새벽 5시에 기상해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7시부터 서둘러 수속을 마치고 대한항공 KE073편으로 13시간 동안의 비행에 올랐다.

좌석은 만석이었다. 월드리그를 주관하는 국제배구연맹(FIVB)이 12명의 선수를 포함 박기원 감독과 코칭스태프 등 20명에게 제공한 티켓은 모두 이코노믹석이었다. 큰 체구의 선수들은 비좁은 좌석에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선수단을 위해 좌석을 업그레이드 해줄 때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현재 대한배구협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다. 비행기내 통로에 서서 시간을 보내는 큰 키의 대표선수들을 보는 것은 딱했다.

13시간의 시차가 나는 캐나다 토론토 국제공항에 도작한 것은 현지시간으로 12일 오전 11시.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는데 문제가 생겼다. 단체화물로 가져오던 아이스박스가 문제였다. 선수들의 부식이 들어있는 아이스박스를 한 선수가 들고 나오는데 세관원이 내용물을 궁금해 했다. 김과 육포 등 음식 때문에 한동안 옥신각신 했다. 결국 육포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포기했다. 선수들은 공항 부근에 있는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2시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거의 하루를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몸은 만신창이지만 시차를 좀더 빨리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버텨야 했다. 숙소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미시소거의 허시센터에서 벌어진 2시간의 훈련은 힘들었다. 선수들의 몸은 무거웠다. 비몽사몽 하는 가운데 선수들은 공을 따라다녔다.

보통 건강한 사람이 극복할 수 있는 시차는 하루에 1시간 정도라고 한다. 그 이상이 되면 신체 리듬 어딘가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낮과 밤이 바뀌는 13시간의 시차라면 최소 일주일, 많은 경우 13일이 시간이 필요하지만 대표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이었다.

FIVB가 월드리그에 출전하는 각국 팀에게 지급하는 원정비용 가운데 경기 전 숙소를 사용할 수 있는 비용은 딱 이틀 치였다. 그보다 먼저 원정지에 들어와 훈련을 할 수도 있지만 그 비용은 모두 각국 배구협회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배구회관을 무리해서 구입한 바람에 100억원이 넘는 대출에 대한 이자를 대느라 허리가 휠 정도인 대한배구협회로서는 선수들을 위해 어떤 편의도 추가로 제공하기 어려웠다.

대표팀 박기원 감독은 이런 사정을 너무나 잘 아는지라 한숨만 내쉬었다.
“그나마 올해는 한국에서 3경기를 하고 외국에서 2경기를 하는데다 처음 2경기는 홈이어서 낫다. 지난해는 홈-원정을 매주 번갈아 다니느라 선수들이 비행기만 보면 진저리를 틀었다. 이런 힘든 일정 때문에 월드리그 출전을 꺼려하는 선수도 많다.”

공교롭게도 이번 원정에는 군입대로 논산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는 센터 박상하와 결혼식을 올리는 리베로 이강주가 제외됐다. 대타로 서재덕과 송명근이 12명 엔트리에 들었다.
아무리 국가대표의 의무라지만 별다른 실익이 없는 월드리그를 위해 선수들에게 무한정 희생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이강주도 한차례 연기했던 결혼식이었고 논산에서의 훈련은 예외가 없었다. 대표팀이 그동안 월드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동기부여와 지원, 컨디션 조절 면에서도 눈을 돌려야 할 때가 됐다.

대표팀을 뽑아만 놓고 협회와 연맹 누구도 관심이 없고 아무런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면 과연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경기를 할 것인지 궁금했다. 예전처럼 대표팀이 원정에 간다고 현지에서 동포들이 와서 환영해주고 지원해주는 그런 시대도 이제는 지났다. 다행히 토론토에는 예전 현대배구단 원년멤버 출신의 배구인이 소식을 듣고 선수단 숙소로 김치를 들고 왔다. 그것이 현지에서 받은 첫 지원이었다.

미시소거(캐나다 온타리오주) l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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