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시간의 사나이 ‘왼발 드라마’ 또 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종료직전 프리킥 동점골로 한국축구 살린 김치우

《 힘쓸 치(致), 도울 우(佑). 이름 그대로였다. ‘치우천왕’ 김치우(30·서울·사진)가 한국 축구를 힘껏 도왔다. 김치우는 5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6차전 후반 추가 시간에 극적인 동점(1-1) 골을 터뜨려 한국 축구를 구해냈다. 김치우의 왼발 프리킥 골이 없었더라면 한국은 또 한 번 대참사를 겪을 뻔했다. 한국은 2011년 11월 아시아지역 3차 예선 방문 경기에서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1위이던 레바논에 1-2로 패하면서 ‘베이루트 대참사’의 굴욕을 맛봤다. 당시 한국의 FIFA 랭킹은 32위였다. 》    
    

김치우의 드라마 같은 왼발 프리킥 골은 4년 전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도 있었다. 김치우는 2009년 4월 서울에서 열린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5차전 북한과의 경기 때 후반 42분 프리킥 결승골로 1-0 승리를 이끌었다. 후반 33분 마지막인 세 번째 교체 선수로 투입된 그는 9분 만에 상대 골망을 흔들면서 한국 축구가 남아공으로 가는 길을 넓혔다. 2010년 프로축구 제주와의 K리그 챔피언 결정 1차전에서 1-2로 뒤지던 후반 추가 시간에 극적인 동점 골을 넣은 뒤부터는 그에게 ‘극작가’란 별명도 붙었다. 드라마 같은 장면을 자주 만든다는 얘기다.

그의 삶은 굴곡이 많았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암으로 잃었다. 이후로는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와는 어머니를 여의기 전에 헤어졌다.

프로에서도 그는 한 팀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풍생고와 중앙대를 나와 2004년 인천에서 프로 데뷔를 한 그는 연이은 트레이드를 거치며 인천에서 전남으로, 전남에서 서울로 팀을 옮겼다. 그 뒤로도 서울에서 전남으로 한 번 더 이적했다가 결국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전남 사령탑으로 김치우를 지도했던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그를 ‘새색시’라 불렀다. 그만큼 성격이 내성적이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는 거침이 없는 그에게 팬들은 ‘치우천왕’이란 별명을 달아줬다. ‘붉은 악마’의 상징인 ‘치우천왕’은 나라를 지키는 전쟁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활약하며 한국의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하지만 최종 엔트리에는 들지 못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는 못했다. 김치우가 최종 예선 남은 두 경기에서 ‘황금 왼발’을 앞세운 활약으로 8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이끈 뒤 브라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김치우#레바논전#왼발 프리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