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정구선수 문대용, 시련을 보약으로… 한국의 ‘애시’를 꿈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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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 선수 문대용(인하대 2년)이 15일 인천 인하대 정구코트에서 하얀 정구공을 들어 오른쪽 눈을 가리고 있다. 문대용은 일곱 살, 열네 살 때 오른쪽 눈을 두 번 다쳐 오른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러나 문대용은 “어릴 때는 ‘왜 내가 다쳐야 했을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 경기를 이기고 났을 때는 ‘왜 내가 이겨야 했을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장애등급 신청을 하지 않고 있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정구 선수 문대용(인하대 2년)이 15일 인천 인하대 정구코트에서 하얀 정구공을 들어 오른쪽 눈을 가리고 있다. 문대용은 일곱 살, 열네 살 때 오른쪽 눈을 두 번 다쳐 오른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러나 문대용은 “어릴 때는 ‘왜 내가 다쳐야 했을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 경기를 이기고 났을 때는 ‘왜 내가 이겨야 했을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장애등급 신청을 하지 않고 있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아서 애시
아서 애시
미국 예일대는 1953년 졸업생을 대상으로 자기 인생에 얼마나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했다. 27%는 ‘아직 아무 목표가 없다’고 답했고, 60%는 ‘뚜렷하지는 않지만 막연한 목표는 있다’고 답했다. 10%는 ‘구체적인 목표를 항상 생각하고는 있지만 글로 남긴 적은 없다’고 했다. ‘꿈을 구체적으로 글로 써 간직하고 있다’고 답한 학생은 겨우 3%였다.

예일대는 20년 뒤 졸업생들을 추적했다. 꿈을 글로 적은 학생 3%의 재산 총합이 나머지 학생 97%보다 많았다. 꿈은 글로 써야 언젠가 더 큰 현실이 된다.

정구 선수 문대용(인하대 2년)이 처음 자기 꿈을 글로 적은 건 경북 문경중 1학년 가을이었다. 그해 여름 그는 부채로 장난치다 오른쪽 눈을 찔렸다. 이미 일곱 살 때 나뭇가지에 찔려 시력을 거의 잃었던 눈이었다. 15일 인천 인하대 캠퍼스에서 만난 그는 “오른쪽 눈은 낮이면 하얗게, 밤이면 까맣게 보이는 게 현재 상태”라고 말했다. 겁이 났다. 운동을 하면 자꾸 이렇게 위험한 일이 닥칠 것만 같았다. 그는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하고 3개월 동안 방황했다.

그때 문대용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백현식 코치(현 문경공고)가 ‘꿈을 가지라’고 그를 다독였다. 그는 일기장에 “국내 최고의 중학생 정구 선수가 되겠다”고 썼다. 문대용은 이듬해 제85회 동아일보기 전국정구대회에 중등부가 생기자 단체전과 복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꿈을 이뤘다.

문대용이 처음 정구를 시작한 건 문경중앙초교 3학년 때. 아버지는 아홉 살 때 사고로 숨졌고 돈을 벌어 오겠다며 외지로 떠난 어머니는 소식이 끊겼다. 그는 외할머니 임고미 씨(65) 손에 맡겨졌다. 문대용은 “시력검사를 받으면 놀림을 많이 받아 싸우는 일이 잦았다. 손자가 걱정된 할머니가 박인영 감독님께 저를 맡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정구가 너무 싫었다. 문대용은 “한쪽 눈으로 움직이는 공을 보고 쳐야 하니까 라켓에 공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를 붙잡아 준 건 김희수(현 문경시청)-한송이 코치 부부. 그는 “천사표 한 코치님이 임신을 하셔서 남편 김 코치님이 대신 오셨는데 완전 악마였다”고 웃으며 “지금은 저를 잡아주려던 그 마음에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집안 사정으로 살 곳이 없어진 것. 백현식 코치는 중학교 2학년이던 문대용을 문경공고 선수들과 함께 합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줬다. 문대용은 형들 틈에서 새우잠에 들기 전 “주니어 대표 선수가 돼 코치님께 보답하겠다”고 썼다. 그는 고 2, 3학년 때 2년 연속으로 주니어 대표에 뽑혔다.

이달 5∼10일 고향 문경에서 열린 제91회 동아일보기 대회서도 인하대는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문대용은 동아시아경기 대표 선발전 때 다쳐 출전하지 못했다. 그는 홀로 스탠드에 앉아 ‘전국체육대회 우승’, ‘국가대표 선발’이라고 목표를 썼다. 그는 “실업팀 선배들보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더 열심히 운동해서 학교가 있는 인천에서 열리는 내년 아시아경기 대표팀에 꼭 들고 싶다”고 말했다.

문대용의 ‘인생의 꿈’은 뭘까. 그는 “뜻하지 않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 친구들을 붙잡아 주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그러기 위해 꼭 대한정구협회장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1975년 윔블던오픈 테니스대회서 우승하며 흑인 최초로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아서 애시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반(半)문맹인 테니스 코트 관리인인 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그 덕에 늘 테니스를 가까이했지만 애시가 살던 미국 버지니아 주는 흑인에게 테니스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애시는 은퇴 후 펴낸 책에 “사람들이 나를 테니스 선수로만 기억한다면 나는 실패한 인간”이라고 썼다. 그 뒤 흑인과 빈곤층 어린이를 위한 인권운동가, 자선사업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정구 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선생님이 됐을 것”이라는 그가 꼭 꿈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 대신 쓴다. “문대용은 반드시 한국 정구의 아서 애시가 된다.”

문경·인천=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인하대#문대용#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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