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강병식 “음지에 있는 선수 챙기는게 내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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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4일 07시 00분


프로 생활 11년 만에 선수 생활을 접고 2군 타격코치로 새롭게 출발하는 넥센 강병식 코치(왼쪽 끝)가 선수단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정식으로 인사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프로 생활 11년 만에 선수 생활을 접고 2군 타격코치로 새롭게 출발하는 넥센 강병식 코치(왼쪽 끝)가 선수단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정식으로 인사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올 7월 구단 제의에 플레잉코치로 전환

“늘 보던 동료들과 입장이 바뀌니 낯설어
코치로 야구 2막…내게는 최고의 행운”


넥센 강병식(35). 그 이름 뒤에는 불과 5개월 전까지만 해도 ‘선수’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코치’다. 시즌이 한창이던 7월에 구단의 제의를 받아 들여 플레잉코치로 전환했고, 시즌이 끝난 뒤 선수 생활을 공식 마감했다. 여전히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이제 타석에서 배트를 휘두르는 대신 덕아웃에서 선수들을 지켜봐야 한다. 강 코치는 23일 “아직 실감이 잘 안 나지만, 조금씩 적응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야구를 그다지 잘하지는 못했지만, 지도자로서는 잘 해내고 싶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주장으로 출발했다가 플레잉코치로 끝난 시즌

강병식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장 완장을 차고 시즌을 시작했다. 개막과 동시에 불편한 치아 교정기까지 낄 만큼 의욕이 넘쳤다. 치아의 부교합 때문에 계속 몸의 왼쪽 부분에만 부상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 시즌 처음으로 팀이 ‘꼴찌’를 경험했던 게 한으로 남았다. 강 코치는 “지난해에 우리 팀이 최하위를 하지 않았나. 2002년 현대에 입단한 뒤 꼴찌는 처음 해봐서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며 “올해는 ‘팀이 좀 잘 했으면, 꼴찌는 제발 안 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넥센은 개막 이후 계속 상위권에서 고공비행을 했다. 시즌 초반이 지나고 중반으로 접어들었는데도 내려올 줄 몰랐다. 히어로즈 창단 후 처음으로 4강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야구가 뜻대로 안 풀려 괴로운 시간이기도 했다. 개인성적이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솔직히 제 상황은 너무 어지러운데, 또 팀이 잘 되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좋기도 하고…. 제가 이 팀에 오래 있었잖아요. 뿌듯하면서도 (나 때문에) 안타까운, 복합적인 마음이었어요. 그때 구단에서 은퇴 제안을 받은 거죠.”

○구단의 코치 제안, “내게는 행운이라고 생각”

7월 11일, 강병식은 후배 이택근(30)에게 주장 자리를 물려주고 2군으로 내려갔다. 구단의 뜻대로 은퇴를 결심한 것이다. 전문 대타요원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던 그의 프로 11년 통산 성적은 타율 0.236에 39홈런 174타점. 당연히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아쉬움도 남았다. 그러나 그는 “그만둘 때 곧바로 코치 제의를 받는 것도 쉽지 않은 기회”라고 여겼다. 은퇴하면서 조용히 유니폼을 벗고 야구장을 떠나야 하는 선수들도 많기 때문이다. “구단에서 저를 좋게 봐주셔서 플레잉코치로라도 기회를 주신 거잖아요. 더 이상 미련 갖지 말고 받아들이자고 마음 먹었어요.” 그리고 조용히 1군 라커에서 짐을 쌌다. 치열한 순위 싸움을 하고 있는 팀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은퇴 발표나 인터뷰도 사절했다. 그 후 팀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결국 4강이 무산된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아쉬움이다.

○코치로서의 소신? “음지에 있는 선수들 살피고파”

강병식 코치는 “아직까지 실감이 안 나는 건 사실이지만, 이제 조금씩 지도자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늘 보던 선수들이잖아요. 아침에 함께 운동하고 들어와서 함께 유니폼 입고 경기를 준비하곤 했는데, 이제 내가 그 선수들을 코치로서 살펴봐야 한다는 게 낯설긴 하네요.” 그러나 본격적으로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내년 1월쯤에는 더 익숙해지리라고 믿는다. 강 코치는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동행하지 않고, 한국에 남은 선수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게 된다.

그에게는 아직 코치로서 거창한 목표나 포부가 없다.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배워가는 단계여서 그렇다. 그래도 소신 하나는 있다. 화려하지 않았던 선수생활이 그의 마음에 남겨준 가치다. “저는 야구를 잘 한 선수가 아니었어요. 사실 강정호나 박병호 같은 대표 선수들은 제가 굳이 챙기지 않아도 잘 하잖아요. 하지만 그 뒤에는 음지에서 남몰래 고생하는 선수들이 있거든요. 2군 경기든, 아니면 1군의 133경기 가운데 단 한 게임이든 최선을 다해 뛰는 선수들 말이에요. 제가 그 친구들의 심정을 100%는 알 수 없겠지만, 이해해주고 보듬어주고 싶어요. 아직 잘 되지 못한 선수들이 앞으로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곁에 있어주고 싶어요.”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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