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수… 맞소? 최대 라이벌 류현진-윤석민 맞대결은 2007년 한번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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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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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선동열 끝장승부… 숨막히는 맞수 대결 그리워

류현진
‘맞수’가 보이지 않는다. 경기 막판까지 숨죽이는 명승부를 펼쳤던 라이벌이 사라졌다. 요즘 한국 프로야구가 그렇다. ‘투수 놀음’의 개념도 달라졌다. 완투하는 투수가 거의 없다. 다승 평균자책 탈삼진 등 주요 부문 상위권은 외국인 선수의 차지다. 13일 현재 토종 투수 가운데 삼성 장원삼이 다승 공동 1위(14승)이며 한화 류현진이 탈삼진 1위(184개)와 평균자책 3위(2.76)로 체면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 ‘퍼펙트게임’의 추억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맞수는 고 최동원(1958∼2011·전 한화 2군 감독)과 선동열(49·KIA 감독)이 손꼽힌다. 둘은 각각 롯데와 해태의 에이스로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세 번을 맞붙었다. 1986년 4월 19일 첫 번째 대결에선 선동열이 9이닝 6피안타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거뒀다. 그해 8월 19일에는 최동원이 9이닝 7피안타 무실점 완봉승으로 균형을 맞췄다. 1987년 5월 16일 경기에선 둘이 모두 15이닝 동안 마운드를 지켰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둘 다 2점만 허용하는 혈투였지만 승리의 여신은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최동원은 프로 8시즌 동안 80경기를, 선동열은 10시즌 동안 68경기를 완투했다. 이처럼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완투가 많았다. 1987년에는 완투(완봉 포함) 경기가 254경기나 됐다. 그러나 올해는 10분의 1 수준(22경기)으로 줄었다. ‘선발-중간계투-마무리’로 투수 운용이 분업화됐기 때문이다.

○ 최동원과 선동열, 진정한 승자는?

최동원과 선동열은 각각 경남고, 광주일고 재학 시절부터 ‘황금팔’로 불렸다. 최동원은 연세대 1학년 때인 1977년 니카라과 슈퍼월드컵 대회 우승 당시 최고시속 155km짜리 직구를 던졌다. 선동열은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 우승 당시 일본을 꺾은 주역이었다.

최수원 심판은 친형인 최동원과 선동열을 “모두 뛰어난 투수지만 단순 비교를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둘이 네 살이나 차이가 나는 데다 프로에서 최동원은 전성기가 지났고 선동열은 상승세를 타던 때라는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개성은 뚜렷했다. 직구 외에 변화구도 뛰어났다. 최동원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커브와 타자 몸쪽으로 휘어지는 슈트를, 선동열은 칼날처럼 꺾이는 슬라이더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다. 최 심판은 “두 사람 모두 정면 승부를 즐겼다는 게 닮았다. 최동원은 연투 능력이, 선동열은 경기 운영 능력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윤석민
최 심판은 생전의 최동원이 선동열을 한 번도 ‘경쟁자’라고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마운드에 오른 또 다른 최동원과의 싸움일 뿐”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선동열 역시 “나와 비교할 수 없는 야구 선배”라고 고인을 회상했다.

요즘 프로야구에선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한화 류현진과 KIA 윤석민이 라이벌로 꼽힌다. 그러나 둘의 맞대결은 2007년 8월 21일 광주에서 한 번뿐이었다. 모두 승패 없이 7이닝만 던진 뒤 물러났다. 경기 내용상으로는 류현진이 5피안타 1실점으로 홈런 3방을 포함해 8피안타 3실점한 윤석민에게 앞섰다. 통산 완투 능력도 류현진(27회)이 윤석민(9회)보다 뛰어났다.

최 심판은 “류현진의 체인지업이나 윤석민의 슬라이더는 과거의 최동원 선동열 못지않다”면서도 “한 경기를 책임지겠다는 파이터 정신은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체형은 좋아졌지만 정신력은 약해졌다는 얘기였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류현진#윤석민#맞수#끝장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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