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 맞는 150km, 마구 같은 14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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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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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들 ‘스피드보다 제구력’에 희비
들쭉날쭉 광속구 바티스타 고전, 칼날 피칭 밴해켄은 펄펄

‘포. 카. 리. 스. 웨. 트.’

1993년 광주 무등야구장 외야 담장에는 손바닥 크기만 한 광고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당시 프로 5년차 해태 투수 조계현(현 LG 코치)은 이곳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20m 거리에서 광고판 글자를 하나하나 맞혔다. 그만의 특별 제구력 훈련이었다. 그는 1992년 마무리로 156이닝을 던진 뒤 어깨에 이상을 느꼈다. 시속 150km에 육박하던 직구 구속을 3∼4km 줄였다. 강속구 대신 제구력을 선택한 것이다. 조 코치는 “당시 광고 글자를 맞히는 훈련이 없었다면 제구력 투수로 변신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 투수의 생명은 스피드가 아닌 제구력


2012년. 시속 150km 강속구를 던지는 ‘파이어볼러’는 많아졌다. 하지만 제구력이 좋은 투수는 드물다. 특히 올 시즌에는 ‘투수의 생명은 볼 스피드가 아닌 제구력’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재조명받고 있다. 바티스타(한화) 등 제구력이 안되는 파이어볼러들이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키치(LG), 밴해켄(넥센) 등은 직구가 시속 140km대지만 제구력이 안정돼 팀의 중심투수로 자리 잡았다.

제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역대 프로야구 제구력 도사로 불렸던 대가들에게 명품 컨트롤의 비법을 들어봤다. 이들은 제구력의 3대 요소로 투구 밸런스, 안정된 릴리스 포인트, 정신력을 꼽았다. 한 야구 관계자는 “스프링캠프에서 공을 3000개는 던져야 제구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 제구력 갖추기 위한 비법도 가지가지


칼날 제구력으로 이름을 날렸던 조계현 코치는 50m 이상의 롱토스를 강조했다. 투구 밸런스가 잡혀야 50m 거리에서 일정한 지점에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거였다. 어깨근육과 지구력을 강화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불펜 피칭을 할 때 같은 지점을 향해 10회 이상 반복적으로 던지는 것도 제구력을 잡는 데 효과적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컨트롤 아티스트’로 통했던 서재응(KIA)이 쓰는 방법이다. 정명원 두산 코치는 “불펜 피칭을 할 때 한 곳을 정해 여러 번 던지는 게 릴리스 포인트를 찾는 데 좋다”고 했다.

국내 프로야구 최다 세이브 기록(227세이브)을 갖고 있는 김용수 중앙대 감독은 하체 중심 이동을 강조했다. 그는 현역 시절 낭심과 배꼽 사이에 힘을 주고 상체를 고정한 상태에서 하체만 와인드업을 하는 동작을 반복했다. “나처럼 신체조건(키 176cm 몸무게 72kg)이 뛰어나지 않아도 제구력이 좋으면 롱런할 수 있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제구력을 흐트러뜨리기도 한다. 송진우 코치는 “제구력 난조로 2군에 내려온 바티스타에게 기술적인 부분은 얘기하지 않았다. 바티스타의 문제는 심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복적인 연습과 강한 정신력이 조화를 이뤄야 제구력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구속#제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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