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신의 완투 혈전은 이젠 영화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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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9일 07시 00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투지와 희생정신이 요구되고 있다. 당대를 대표한 최고 투수로서 언제나 마운드에서 최선을 다했던 선동열(왼쪽)과 고 최동원. 둘은 한국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15이닝 완투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스포츠동아DB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투지와 희생정신이 요구되고 있다. 당대를 대표한 최고 투수로서 언제나 마운드에서 최선을 다했던 선동열(왼쪽)과 고 최동원. 둘은 한국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15이닝 완투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스포츠동아DB
투수들 공 100개만 넘기면 덕아웃 흘깃
아프면 쉽게 포기…‘자기희생 야구’ 실종
선동열 vs 최동원 15회 승부는 옛 이야기


요즘 우리 아이들의 몸을 조사했더니 덩치는 커졌지만 체력은 훨씬 떨어졌다고 한다. 영양상태가 좋아 예전보다 체격은 서구화됐지만 단단하지는 못하다는 얘기다.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21세기에 뛰는 선수들이 너무 자주 아프다. 아프면 쉽게 경기를 포기한다.

5월 30일 사직구장에서 LG 김기태 감독은 허리통증을 호소하며 경기에 빠지겠다는 ‘작은’ 이병규를 나무랐다. 같은 시간 잠실에서 KIA 선동열 감독도 이범호가 오른쪽 종아리 통증으로 라인업에서 빠지자 한숨을 쉬었다. “요즘 이렇다. 선수들이 스스로 경기에 나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야구장에 나오는데 방법이 없다. 아프면 빼야지”라고 말했다.

선수들이 몸을 사리는 이유가 있다. 전처럼 죽기 살기로 참고 하기보다는 몸을 아껴 오랫동안 야구하고 프리에이전트(FA) 대박을 여러 번 잡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선수들에게 팀을 위한 충성을 강조하며 다그쳐봐야 부작용만 생긴다고 감독들은 한탄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다른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편이 낫다고 감독들은 말한다. “야구가 절박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심판들도 예전과 달라진 흐름에 대해 동조한다. “투수들이 공 100개만 넘기면 덕아웃을 쳐다본다. 바꿔달라고 한다. 옛날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영화로도 나왔던 선동열-최동원의 15회 완투대결은 지금 야구에선 불가능하다. 요즘 선수들이라면 스스로 먼저 마운드에서 내려가려고 할 것이다. 1987년 5월 16일 사직에서 완투대결을 펼쳤던 선동열 감독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9회를 마쳤는데 (최)동원이 형이 10회초 마운드에 올랐다. 나도 당연히 나가야 했다. 내가 먼저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11회, 12회 계속 동원이 형이 마운드에 올랐다. 그렇게 하다보니 15회까지 완투하게 됐다.”

선동열과 최동원은 한국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타고난 투수여서 그런 무지막지한 피칭이 가능했다고 치자. 다른 투수들도 15회 완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두산 김진욱 감독. 1987년 선동열과 광주에서 15회 완투대결(1-1 무승부)을 했다. 1986년 7월 27일 인천 도원구장에선 해태 차동철과 청보 김신부가 15회 완봉대결(0-0 무승부)을 했다. 모두 상대 타자를 압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신들린 듯한 컨트롤과 변화구로 역투하며 전설을 만들었다. 1985년 5월 7일 해태 강만식은 대구 삼성전에서 연장 15회 경기에서 0-1로 패하며 14회 완투패를 했다.

공교롭게도 투수의 15회 경기 완투는 1994년 4월 28일 해태 조계현-쌍방울 김원형을 끝으로 없다. 지금까지 딱 8명의 투수가 9번의 15이닝 완투를 했다. 선동열이 2번이고, 해태 선수가 무려 5번이다. 왜 해태가 강팀이고 투지와 근성의 팀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수치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투지와 자기희생, 21세기 한국프로야구에도 꼭 필요한 덕목들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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