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정민철 한화 투수코치 “빛과 그림자 경험한 나…행복한 투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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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1일 07시 00분


1등 대기록 없이도 최고라 불리는 한화맨
8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에 한화 우승까지…
자신에 찬 직구 하나로 마운드를 평정했다

한화 정민철 투수코치(가운데)는 최고의 에이스로 군림했던 1990년대와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2000년대를 
거치면서 선수 생활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경험했다. 그는 이제 투수 전원을 품에 안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정 코치가 경기 도중 에이스 류현진(왼쪽), 포수 신경현과 마운드에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스포츠동아DB
한화 정민철 투수코치(가운데)는 최고의 에이스로 군림했던 1990년대와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2000년대를 거치면서 선수 생활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경험했다. 그는 이제 투수 전원을 품에 안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정 코치가 경기 도중 에이스 류현진(왼쪽), 포수 신경현과 마운드에서 얘기를 나누는 모습.스포츠동아DB
한국 프로야구에서 두 번째로 많은 승리(161승)를 거둔 투수.

통산 투구이닝(2394.2이닝)과 선발 등판(370회), 통산 두 자릿수 승리(10년)와 연속 시즌 두 자릿수 승리(8년·1992∼1999년) 기록이 모두 역대 2위다.

현역 시절 총 60번을 완투했고, 20번의 완봉승(공동 2위)과 49번의 완투승(공동 6위)을 해냈다. 200이닝을 넘게 던진 시즌도 네 번이나 된다.

한 번도 ‘1등’이었던 적은 없었다. 시즌 최우수선수(MVP)도, 투수 골든글러브도 받아보지 못했다. 다승왕도 종종 눈앞에서 놓쳤다.

그런데도 1990년대 이글스 팬들에게 최고의 에이스로 불렸다. 누구보다 꾸준했고, 압도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함께 뛰었던 선수들은 “그가 등판하는 날이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스포츠동아가 연재하는 ‘코치, 그들을 말한다’의 20번째 주인공.

바로 한화 정민철(40) 투수코치다.

○데뷔 후 8년 연속 10승…만화 주인공 같았던 에이스

1992년 LG와의 대전 개막 2연전 두 번째 경기. 팀은 리드 중이었고 주자는 만루였다. 스프링캠프도 못 갔던 스무 살 무명 신인 투수가 출전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야심 찬 투구는 얼마 못 갔다. 동점 만루포를 얻어맞았고, 다음 타자에게 또 안타를 내줬다. 그대로 강판. 그런데 고개를 푹 숙인 그에게 김영덕 감독이 말했다. “광주 해태전 선발 준비해라.” 얼떨결에 예상치 못한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결과는 6이닝 1실점 첫 승리. “상당히 인상적이었죠?” 정 코치의 농담대로였다. 그렇게 투수 정민철의 성공시대가 시작됐다.

데뷔 첫 해 14승에 방어율 2.48로 다승·방어율 2위에 올랐다. 방위로 군복무를 한 이듬해에는 홈에서 18경기만 등판해 13승을 올렸다. 1996·1997년에는 완봉승을 네 번씩 했다. 당연히 그해 최다 완봉 투수. 1998년도 드라마 같았다. 팔꿈치 통증 때문에 1승만 따내고 전반기를 접었다가 후반기에 복귀해 9승을 쓸어 담았다. 13경기에서 10승. 그리고 1999년에는 개인 최다인 18승을 올려 팀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타선이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질 때나,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해 고생할 때나, 늘 흔들림이 없는 에이스였다.

○노히트노런 합작한 포수 강인권 “직구 최고”


스스로도 직구 하나는 세상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타자가 파울볼만 쳐도 자존심이 상했던 시절이었다. 정 코치는 “사실 그때는 야구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만화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당시 호흡을 맞췄던 포수 강인권(40·NC 배터리 코치)도 “정민철은 워낙 볼끝이 좋은 투수였다. 직구·슬라이더·느린 커브 딱 세 가지만 던졌는데 직구가 워낙 좋아서 다른 게 필요 없었다”면서 “그동안 수많은 투수의 공을 받아봤지만 그때의 정민철 같은 공은 다시 본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정민철-강인권 배터리는 역대 가장 퍼펙트게임에 근접했던 노히트노런을 합작하기도 했다. 1997년 5월 23일 대전 OB전. 8회 1사 후 OB 심정수가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으로 출루하면서 유일하게 1루를 밟았고, 경기는 무4사구 노히트노런으로 끝났다. 강 코치는 “5회가 넘어가면서 퍼펙트게임을 의식했지만 혹시라도 부정탈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서 “나로 인해 대기록이 깨진 데 대해 아직도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 코치는 “포수 강인권이 없었다면 노히트 노런도 못 했을 경기다.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손사래를 쳤다.

○일본에서의 2년, 고됐지만 값진 경험


야구 인생 최고의 순간. 1999년 한화의 우승. 에이스 정민철은 한국시리즈에서 2승을 올리면서 평생의 꿈을 이뤘다. “마지막 타자가 2루 땅볼을 치는 순간, 2루수가 공을 잡기도 전에 달려 나갔어요.” 세상이 장밋빛. 더 이상 이룰 게 없어 보였다.

그때 그는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일본 요미우리의 러브콜을 받고 일본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더 큰 무대에서 뛰어 보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았어요. 원래는 메이저리그(시카고 컵스)에 도전하려 했지만, 일본의 최고 명문팀이 부르니 욕심이 생겼죠.”

첫 선발 등판도 성공적이었다. 야쿠르트를 상대로 승리 투수(7이닝 1실점)가 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경기 직후 2군행 통보를 받았다. 납득이 안 갔고 자존심도 상했다. 다시 1군에 올라와 요코하마전 완봉승을 한 후에도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2년 만에 짐을 쌌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전에 18승을 할 때도 구위가 예전같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한국에 있었어도 고전했겠구나 싶어요. 투수는 업그레이드도 중요하지만 갖고 있는 걸 잘 유지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계기였죠.”

○2007년 마지막 불꽃…영구결번 그리고 지도자의 길

2002년 한화로 복귀한 후에도 위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팔꿈치 통증이 다시 찾아왔고, 2004년에는 1승도 못 했다. 대표적인 이닝이터였던 그가 ‘5이닝 선발 투수’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찬사부터 야유, 무관심까지 다 받아봤네요.” 그럴수록 그의 절치부심도 계속됐다. 그리고 마침내 불꽃이 타올랐다. ‘기교파’로 변신한 정민철은 2007년 12승3패에 방어율 2.90으로 ‘재기상’을 받았다. 다시 일어선 에이스에게 팬들의 박수가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는 2009년, 은퇴를 결심했다. “공 하나마다 혼을 싣는 건 둘째 문제고, 타자들을 압박할 힘조차 더 이상 없다는 게 느껴졌어요. 덤으로 얻은 선수 생활인데 후배들 자리만 차지하는 것 같아 미안했어요.” 그때 구단이 플레잉코치를 제의했다. 딱 일주일 고민하고 받아들였다.

“아내도 그동안 선수로 살아온 제가 무척 고단해 보였나봐요. 제 결정을 믿고 격려해줬어요. 다행히 두 아들과 은사님들 앞에서 성대한 은퇴식도 하고 대전구장에 23번(영구결번)도 걸게 됐으니, 마지막까지 저는 행복한 선수였네요.”

○“늘 ‘나는 좋은 투수다’라는 마음을 가져라”

정 코치는 정식 코치가 된 후 첫 사령탑인 한대화 감독에게 고마운 게 무척 많다고 했다.

“정식 코치가 된 후 처음으로 모신 감독님이라 각별한 마음이 든다. 늘 코치들 의견에 귀를 기울여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어릴 때부터 야구선수로 존경하던 분이라 많은 점을 배우고 있다. 요즘도 문득 감독님 밑에서 코치를 한다는 사실이 신기할 때가 있다”며 웃었다.

한 감독 역시 정 코치의 친화력을 높이 산다. 한 감독은 “선수들이 코치 말에 귀를 기울이려면 서로의 신뢰 관계가 중요한데, 정 코치는 선수들과의 소통 능력에서 큰 장점을 갖고 있다”고 칭찬했다.

빛과 그림자를 모두 품었던 정 코치의 현역 시절. ‘내가 최고’라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던 젊은 에이스는 고단한 현실을 맞닥뜨리고 한계에 부딪히면서 인생을 배웠다. 그리고 지도자로서 선수들을 폭넓게 감싸 안을 수 있는 자양분을 얻었다.

정 코치는 선수들에게 이렇게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저는 우리 선수들이 ‘나는 좋은 투수다’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에이스 뿐만 아니라 투수 전원이 다 소중하거든요. 어떤 공을 던지느냐보다 어떻게 던지느냐가 중요하잖아요. 공 던지는 사람이 압도적인 느낌을 주게 되면 타자들도 위축되게 마련이에요.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만큼 중요한 게 없어요.”

정민철 코치?
▲생년월일=1972년 3월 28일
▲출신교=대전 신흥초∼충남중∼대전고
▲키·몸무게=187cm·81kg(우투우타)
▲경력=1992년 빙그레∼2000년 요미우리∼2002년 한화∼2010 한화 코치
▲통산 성적=161승(역대 2위) 128패 10세이브, 방어율 3.51, 2394.2이닝 투구(역대 2위) 935자책점, 1661탈삼진(역대 4위)
▲비고=한화 영구결번(23번)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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