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빛가람 본인도 몰랐던 이적, 선수는 거부권리 조차 못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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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8일 07시 00분


해외진출을 노리던 윤빛가람은 경남의 트레이드로 뜻하게 않게 성남 유니폼을 입게 됐다. 윤빛가람은 구단의 일방적인 결정과 선수에게 불리한 K리그 이적 규정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처지에 놓였다. 스포츠동아DB
해외진출을 노리던 윤빛가람은 경남의 트레이드로 뜻하게 않게 성남 유니폼을 입게 됐다. 윤빛가람은 구단의 일방적인 결정과 선수에게 불리한 K리그 이적 규정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처지에 놓였다. 스포츠동아DB
■ 연맹 양도규정 ‘독소조항’ 3대 문제점

1. 구단 마음대로 선수 양도 가능
2. 연봉 오르면 거부권 원천봉쇄
3. 불응하면 임의탈퇴 적용 응징


한국축구의 전근대적인 악법 규정에 또 한 명의 희생양이 나오게 생겼다.

국가대표 미드필더 윤빛가람(21·경남FC)의 성남 일화 이적을 놓고 K리그에 파문이 일고 있다. 경남은 16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구단은 내년 1부 리그에 살아남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다. 윤빛가람은 국가대표와 올림픽대표에 차출돼 K리그에 전념하기 힘들어 대체자가 필요했다. 성남 조재철이 적임자라는 판단을 했고 이런 관점에서 트레이드가 추진됐다”고 발표했다. 2년 간 경남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해 온 윤빛가람을 성남으로 떠나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올 겨울 해외이적을 추진 중이던 윤빛가람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윤빛가람 측은 “성남과 경남이 나의 이적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며 발끈했다. 한 마디로 구단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다. 이번 파문이 일게 된 배경은 프로축구연맹의 전근대적인 악법 규정 때문이다. 이 기회에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선수 거부권 없는 독소조항

연맹 규정 5장 33조는 선수 권리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규정은 ①각 구단은 보유하고 있는 소속 선수를 타 구단에 양도(임대 또는 이적)할 수 있다. ②선수는 원 소속 구단에서의 계약조건보다 더 좋은 조건(기본급 연액과 연봉 중 어느 한 쪽이라도 좋은 조건)으로 이적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없다. ③선수가 이적을 거부하면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경남과 성남이 윤빛가람 이적에 합의를 하고 성남이 윤빛가람에게 경남에서 받던 연봉보다 1원이라도 더 주면 윤빛가람은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선수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성남으로 가야 한다. 국내 축구에서만 볼 수 있는 로컬 룰이다. 축구 선진국 유럽에서도 구단 간 선수 이적은 흔한 일이지만 선수의 거부권을 인정하지 않고 구단 맘대로 이적시키는 경우는 없다.


● 도의적 책임 회피한 경남

윤빛가람은 올 여름 해외 이적을 준비하고 있었다. 몇몇 해외 구단으로부터 제의를 받았는데 그 중 스코틀랜드 레인저스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레인저스가 제시한 이적료는 80만 파운드(14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은 이적료가 너무 낮다며 난색을 표했다. 경남은 홈페이지에 “구단도 윤빛가람의 이적에 가장 우선순위를 둔 것은 해외구단이었다. 그러나 윤빛가람의 가치에 어울리지 않는 납득할 수 없는 낮은 이적료로는 도저히 보낼 수 없었다”고 밝혔다.

경남은 낮은 금액의 이적료에 주축 선수를 해외로 보내야 하는 입장에 처하자 선수에게 아무 통보도 없이 성남과 이적 합의를 해 버렸다. 이적 합의를 할 때는 선수의 의사를 먼저 확인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다. 그러나 경남은 규정상 문제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이런 도의적인 책임을 회피했다. 경남은 이와 관련 팬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지면서 여론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자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을 바로 삭제해 버렸다.

● 독소조항 개선돼야

이런 독소조항이 왜 없어지지 않고 있는 걸까.

5장 33조 규정은 구단의 재산권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선수는 구단의 재산에 속하고 구단은 재산 처분 등에 대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K리그 구단의 재정이 취약한 상황에서 재산권마저 인정받지 못하면 존속 자체가 힘들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또한 K리그 이사회가 그 동안 각 구단 단장 중심으로 구성돼 폐지 의견이 나와도 통과되기는 힘든 구조였다. 그러나 사외이사 등을 포함한 이사회도 새로 출범했고, 드래프트 폐지, 승강제 등 K리그가 전체적으로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조항도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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