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다리 부상… 재활 구슬땀 삼성생명 혼혈농구선수 켈리의 희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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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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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밟은 고국코트, 한 경기라도 뛰고싶어요

내년 1월 복귀를 목표로 재활을 하고 있는 안드레아 켈리가 발목에 깁스를 한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용인=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내년 1월 복귀를 목표로 재활을 하고 있는 안드레아 켈리가 발목에 깁스를 한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용인=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건 20년 만이었다.

어머니의 나라에서 뛰겠다는 오랜 꿈 때문이었다. 의학전문대학원 진학도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 진출도 잠시 미룬 채 내린 일생일대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고국 땅을 밟은 지 한 달 만에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래도 꿈을 접을 수는 없었다. “한국 무대에서 단 한 경기라도 뛰고 싶다”는 혼혈 농구 선수 안드레아 켈리(23·삼성생명) 얘기다.

○ 파란만장했던 유년기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켈리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파란만장했다. 임신 7개월 만에 조산 조짐을 보인 어머니는 필리핀의 미 공군기지로 이송됐다. 아버지가 당시 주한미군 공군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켈리는 부대 안 의료 시설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한국을 떠난 뒤엔 주로 미국 플로리다 공군기지 안에서 살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공군기지였다. 학교 병원 쇼핑센터까지 없는 게 없었다. 농구를 시작한 것도 부대 안에서였다.

○ 미국 정상급 가드로 성장하다

켈리는 고교 시절부터 특급 포인트가드로 주목받았다. 8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프로 농구 선수의 꿈은 잊은 적이 없었다. 켈리는 “아버지는 내 슈팅이 림 속으로 시원하게 빨려 들어갈 때마다 ‘아이스 워터’라고 외쳤다. 지금도 슈팅할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미국 여자프로농구와 필리핀 리그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 의대 진학 미루고 결심한 한국행

켈리는 농구 선수였지만 전공인 생물학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2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미국 사우스일리노이대 의학전문대학원 준비과정에 합격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모든 것을 바꿔 놨다. 그는 “어머니의 나라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 그들은 미국까지 와서 나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켈리는 삼성생명 이호근 감독과 만난 지 3일 만에 3년 계약에 서명했다. 이 감독은 공항까지 나가 그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 오자마자 부상, 하지만…

한국 농구는 듣던 대로 빨랐다. 개인플레이에 의존하는 미국과는 달랐다. 훈련 시간도 두 배 이상 됐다. 적응이 되기도 전에 발목 골절상을 당했다. 의사는 재활하는 데 5개월 이상 걸린다고 했다. 켈리는 “멀리서 온 나를 팀의 일원으로 받아준 감독님과 동료를 위해 포기할 순 없었다”며 “최대한 빨리 회복해 엄마에게 한국 무대에서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 다문화의 희망 켈리

삼성생명도 켈리의 꿈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켈리를 영입한 뒤 ‘혼혈 선수는 한 명만 투입할 수 있다’는 규정이 생겼다. 삼성생명은 혼혈 선수 킴벌리 로벌슨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팀은 켈리가 부상에서 나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이 감독은 “부상당한 용병은 퇴출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켈리의 꿈은 특별하다. 그걸 지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켈리는 경기 용인시 삼성 트레이닝센터에서 내년 1월 복귀를 목표로 재활을 하고 있다. 그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차별당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주위에서 다양한 문화적 소양을 가진 나를 좋아했다”며 “내가 코트에서 뛴다면 한국의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이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프로구단, ‘귀하신 몸’ 혼혈선수 영입 전쟁▼
사진 1장 들고 미국 날아가 이 잡듯 선수 찾기도

혼혈 선수는 용병이 없는 여자 프로농구에서 귀하신 몸이다. 그러나 성공 사례는 드물다. 삼성생명의 킴벌리 로벌슨 정도가 유일하다.

여자 혼혈 선수들은 남자에 비해 예민하다.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어렵다. 마리아 브라운(전 금호생명), 린다 월링턴(전 우리은행), 제네바 터커(전 삼성생명) 등은 뛰어난 능력을 갖췄음에도 한국 무대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품귀현상의 근본적인 이유는 여자 혼혈 선수가 남자에 비해 적다는 데 있다. 농구계에서는 ‘여자 하프 코리안 찾기가 서울역에서 김서방 찾기’보다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비시즌이면 혼혈 선수 찾기 쟁탈전이 벌어진다. 사진 한 장만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사이트에 등록된 선수들을 모두 뒤지기도 한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터커를 영입할 당시 미국 내 즉석 만남 주선 사이트를 이용했다. 사진을 클릭하면 뜨는 ‘코리안 아메리칸(Korean American)’이라는 인종 표시를 보고 그가 혼혈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일주일 동안 수소문한 끝에 터커를 찾아냈다.

안드레아 켈리의 정보는 소셜네트워크 사이트를 뒤져 찾았다. 삼성생명은 미국에 켈리라는 혼혈 선수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페이스북을 통해 그가 루이지애나주립대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2005년 한국에서 뛰었던 재미교포 임정희도 NCAA 디비전 1∼3에 속한 115개 학교 사이트를 모두 뒤져 찾아냈다. 1500여 명의 프로필을 모두 확인하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용인=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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