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베이스볼] 한대화·이용규·김상현 꿀꺽…KIA 바꾸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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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5일 07시 00분


2000년대 초반 LG는 1군과 2군 모두 뛰어난 좌타자가 즐비했다. 2005년 LG는 이대형의 성장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해 이용규를 KIA로 트레이드했다. LG에서 뛸 자리가 없었던 이용규는 KIA에서 국가대표 1번 타자로 폭발했다. 스포츠동아 DB
2000년대 초반 LG는 1군과 2군 모두 뛰어난 좌타자가 즐비했다. 2005년 LG는 이대형의 성장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해 이용규를 KIA로 트레이드했다. LG에서 뛸 자리가 없었던 이용규는 KIA에서 국가대표 1번 타자로 폭발했다. 스포츠동아 DB

대박 혹은 쪽박…역대 트레이드의 위험한 경제학

○트레이드?

유망주를 스타 만든 젖줄
전력보강·선수정리 목적
실 보다는 득 많은 시스템

○최선-최악 트레이드

해태 1985년 한대화 받고
한국시리즈 4연패 일궈내
삼성 김현욱 재영입 20억 써

○트레이드의 역사

1982년 삼성 서정환이 최초
최동원 ↔ 김시진 첫 대형거래
정상적 경우 ‘돈 거래’ 드물어


트레이드는 프로야구에서 항상 많은 관심을 받는 핫이슈다. 트레이드는 그동안 수많은 유망주를 스타로 만든 한국프로야구의 숨겨진 젖줄 역할도 해왔다. 시장이 많이 형성될수록 리그 전체에 부정적인 요소보다 긍정적인 면이 많다.

정상적인 트레이드는 현금이 오가는 경우가 매우 적다. 대부분 선수와 선수가 유니폼을 바꿔 입는다. 2군 선수가 변화구 하나로 10승 투수, 타자의 경우 정신적 안정으로 30홈런-100타점을 날릴 수 있는 무대가 프로야구다. 그래서 트레이드는 최종 결과에 대한 예측이 매우 어려운 거래다.

트레이드의 경제학, 지난 30년간 각 구단은 일면 폐쇄적이고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위험천만한 시장에서 어떤 거래를 해왔고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

○실패한 트레이드의 특징-재고정리

트레이드. 사전적 뜻은 거래다. 프로스포츠에서 트레이드는 독특한 거래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모든 트레이드는 시장에서 이뤄진다. 시장은 한 나라의 단일리그 혹은 양대 리그 그리고 국경을 넘어서도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한국 프로야구의 트레이드는 거의 대부분 국내 구단간의 거래다. 각 구단은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구매자다. 단 8개 구단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대단히 과점적이면서 폐쇄적인 시장이다.

그래서 더 그 거래행위의 결과에 영향이 크다. 데려온 선수가 아무런 이득을 주지 않는 경우보다 떠나보낸 선수의 잠재력이 폭발할 때 구단이 느끼는 절망은 더 크다.

지난 30년간 한국프로야구 트레이드 시장의 가장 큰 승자는 전신 해태를 포함한 KIA다. 해태는 1985년 OB에 황기선, 양승호(현 롯데 감독)를 내주고 한대화를 받는 1:2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한대화는 국가대표 거포출신으로 큰 기대를 받고 OB에 입단했지만 1983년 첫 해 타율 0.272에 그쳤고 85년에는 0.226까지 추락했다. OB에서 3년 동안 한대화가 기록한 홈런은 단 8개였다. 그러나 해태로 옮기자마자 타율 0.298, 14홈런으로 폭발하며 한국시리즈 4연패를 함께 했다.

KIA는 2005년 LG와 이용규, 홍현우를 받고 이원식 소소경을 내주는 트레이드를 했다. LG의 발빠른 외야 유망주 중 한명이었던 이용규는 이후 KIA에서 국가대표 1번 타자로 성장했다. 2009년에는 김상현이 LG에서 트레이드돼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KIA의 성공 반대편에는 실패한 거래자들이 있다. 현금을 제외한 선수 대 선수에 한정해서 실패한 트레이드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대부분 팀에 꼭 필요한 전력을 수소문한 트레이드가 아니었다. 잉여전력이라고 판단한 유망주, 혹은 구단과 마찰을 빚는 선수의 정리가 대부분이다.

한대화의 트레이드는 코칭스태프와 갈등이 첫 번째 이유였고 이용규는 LG가 이대형 등 다른 유망주의 가능성을 더 높이 평가한 결과였다. 김상현을 보낸 배경에도 정성훈의 FA영입이 있었다.

이 밖에 가장 큰 성공 혹은 실패로 꼽히는 트레이드 중 하나는 1995년 삼성과 쌍방울이 거래한 김현욱, 유명선-윤혁, 최한림이다. 삼성은 김현욱이 중심 전력에서 제외되자 노장 유명선과 묶어 트레이드를 통해 정리했다. 그러나 김현욱은 쌍방울에서 20승 투수가 됐고 삼성은 다시 그를 데려오기 위해 무려 20억원을 지출해야 했다.

한 구단 실무 관계자는 “데려오고 싶은 카드를 먼저 정하는 것과 버릴 카드를 미리 선택했을 때 결과에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다. 데려오고 싶었던 카드는 팀이 취약한 포지션인 경우가 많다. 그만큼 많은 기회를 부여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잉여전력을 정리하는 한편 유망주 혹은 보험용 선수를 구하려는 트레이드는 그 반대의 결과가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트레이드 시장의 진화


한국프로야구의 첫 번째 트레이드는 1982년 삼성에서 해태로 현금트레이드 된 서정환 전 KIA 감독이다. 각 지역 출신을 중심으로 출범했던 프로야구의 특성 때문에 삼성 내야에는 국가대표 출신이 즐비했고 선수난에 허덕였던 해태와 이해가 맞아 떨어져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이후 서정환은 해태왕조의 일원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프로야구 초창기 이같은 성격의 트레이드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핵심 선수를 주고받는 트레이드는 드물었다. 1988년 롯데 최동원-삼성 김시진의 트레이드가 첫 번째 대형 거래였다. 그러나 이 역시 전력보강의 목적보다는 구단과 마찰을 빚은 선수의 정리가 더 큰 목적이었다.

김시진 넥센 감독은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대부분 각 지역 출신들이 팀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트레이드를 부끄럽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이 생겼고 구단도 전력보강의 한 축으로 트레이드를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프로야구는 트레이드에 소극적이다. 8개 팀으로 구성된 단일리그의 특성상 트레이드로 자칫 상대 팀 전력이 급격히 상승하면 손해가 그대로 돌아오기 때문에 적극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30년 동안 단 한번도 거래 안한 삼성-LG, 롯데-KIA


한국 트레이드의 시장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일절 거래를 하지 않는 구단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삼성은 1990년 LG가 MBC를 인수해 프로야구에 합류한 이후 단 한차례도 트레이드를 하지 않았다.

롯데와 KIA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이후부터 30년간 거래가 없었다. 삼성과 LG는 전자, 재계 라이벌 의식이 여전히 강하다. 그 배경이 트레이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KIA의 전신인 해태와 롯데는 과거 제과업계 라이벌이었다. 그러나 KIA가 팀을 인수한 뒤에도 트레이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제 모기업의 라이벌 의식은 사라졌지만 거래가 성사된 적이 없다. KIA 관계자는 “최근 몇 해 롯데와 KIA는 팀의 전력 흐름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트레이드가 성사되지 않았다. KIA와 LG가 자주 트레이드를 했던 이유는 전력의 강점과 약점이 정 반대였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경호 기자(트위터 @rushlkh)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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