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박정헌 씨,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도전하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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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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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손가락 잃었지만 삶의 고도는 계속 높여야”

세계 최초의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비행에 나서는 대원들. 왼쪽부터 홍필표 박정헌 함영민 씨. 작은 사진은 동료를 구하는 과정에서 손가락을 잃은 박 씨의 손.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세계 최초의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비행에 나서는 대원들. 왼쪽부터 홍필표 박정헌 함영민 씨. 작은 사진은 동료를 구하는 과정에서 손가락을 잃은 박 씨의 손.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형, 살려 주세요!”

커다란 구덩이 속에서 누군가가 잡아당기듯이 후배 최강식 씨(31)를 빨아 당겼다. 줄로 연결돼 있던 그도 순식간에 끌려 들어갔다. 직감적으로 악마의 구덩이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느낀 그는 들고 있던 도구로 얼음바닥을 힘껏 찍고 버텼다. 2005년 1월 히말라야 촐라체(6440m) 북벽. 정상 부근의 수직 벽이 1500m에 이르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난벽을 넘어온 직후였다. 박정헌 씨(40)가 찍어 박은 아이스바일 끝에 두 사람의 목숨이 달렸다.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구덩이는 고산지대 빙하가 갈라진 틈새.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이 위에 최 씨는 박 씨와 끈 하나로 연결된 채 대롱대롱 매달렸다. 구덩이 언저리에서 박 씨는 사투를 벌였다. 최 씨가 떨어지면서 그의 온 체중이 실린 줄이 박 씨를 잡아챘고 그 바람에 박 씨의 갈비뼈들이 부러졌다. 최 씨는 떨어지면서 벽에 부딪혀 두 다리가 부러졌다. 그 순간 끈 하나는 두 사람의 운명이었다. 끈을 자르고 혼자 살아서 갈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함께하다 같이 어둠의 심연 속으로 떨어질 것인가.

그는 그 끈을 자르지 않았다. 박 씨는 사력을 다해 후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탈진한 채 며칠간 산을 기어 내려왔다.

줄을 잡고 언 손에 힘을 주었던 박 씨는 이후 동상이 악화돼 8개의 손가락 마디를 잘라냈다. 최 씨도 9개의 손가락 마디를 잃었다.

세월이 흘러 6년 뒤. 박 씨와 최 씨는 다시 한무대에 섰다. 25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발대식. 한 사람은 떠나고 한 사람은 보내는 자리였다. 발대식의 사회를 맡은 최 씨는 “형에게 늘 미안했는데 새 목표를 세워 고맙다”고 소감을 전했다.

안나푸르나 남벽 등 거벽등반에 한 획을 그으며 대표적인 등로주의(험한 코스를 골라 오르는 방식) 등반가였던 박 씨는 이후 자일을 쥐지 못한다. 그 대신 하늘을 날아 히말라야를 횡단하기로 했다.

박 씨는 ‘한국 히말라야 횡단 원정대’를 꾸려 8월 말 파키스탄 힌두쿠시에서 비행을 시작한다. 서에서 동으로 2400km에 이르는 히말라야 줄기를 따라 비행한다. 기류를 타고 6000∼7000m 상공까지 올라가 한 번에 50∼100km를 날아간다. 세계 최초의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 비행이다.

그는 “짧게 살더라도 무엇을 얼마나 깊게 느끼느냐가 중요하다”며 “등반이나 탐험이라는 극한 체험은 나에게 삶의 고도를 높이는 방법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 출신 홍필표 씨(44)와 패러글라이딩 전문가 함영민 씨(41)가 동행한다. 3명은 3년 전부터 훈련비행을 해왔다.

7000∼8000m의 거봉이 즐비한 히말라야 산군에서 부딪히는 기류는 험난하다. 거센 폭풍우가 치는 곳에 들어가는 것과도 같다.

산줄기와 산줄기를 징검다리 비행을 하며 횡단할 예정이다. 날씨가 나쁘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걸어서 산을 오른 뒤 비행할 예정. 총비행거리는 6000km, 등반거리는 1500km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위험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박 씨는 “험난한 난기류 옆에는 또 더 안전한 상승기류도 있더라”라며 웃었다. 함 씨와 홍 씨는 “오랜 기간 기류를 익힌 경험들이 있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최대한 서로 예민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6개월에 걸친 이들의 대장정에 동참하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할 예정이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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