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더 팬] 그녀의 ‘잊혀질 권리’

  • 스포츠동아
  • 입력 2011년 5월 27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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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포츠 전문 채널의 아나운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명한 사람의 죽음 뒤에는 늘 그러했듯 후폭풍이 상당히 지독하다. 고인의 사생활은 이리저리 난도질당하고, 각종 사회적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줄을 잇는다. 미디어는 이 모든 상황을 친절하게 생중계하면서 정작 고인과 유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가하고, 대중은 과도하게 자책하거나 또는 정의를 부르짖으며 응징을 준비한다. 여러 사람이 앞 다투어 던진 돌에 개구리는 결국 죽었는데, 남은 사람들은 ‘네 돌이 죽였네’, ‘내 돌이 죽였네’, ‘개구리도 문제였네’ 설왕설래 하는 격이다.

돌이켜 보면 애당초 사건의 발단부터 우리 모두 과열되어 있었다. 한편으로는 여신으로 추어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외모나 신체를 화제로 삼아 공론화하고 조금만 약점이 발견되어도 부풀려 희화화하며 비웃었다. 벼랑 끝에 선 그녀가 아프게 남긴 글들을 추리하고 분석하고 해체하여 재조립했으며, 언론은 열심히 이를 부추기고 ‘알 권리’라는 명목 아래 천박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동분서주했다. 그 결과 우리가 마주한 것은 안타까운 죽음이다.

이 모든 사건은 단지 그녀가 공인이라서, 그녀가 순간적으로 경솔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오늘 당장이라도 우리 모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과연 나는 유명하지 않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 1인 매체와 SNS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그녀를 아는 사람보다 나를 아는 사람이 더 적다고 과연 어떻게 자신할 수 있단 말인가. 걸핏하면 이른바 ‘신상 털기’가 버젓이 자행되는 세상에서, 익명성이 끝내 나를 보호해 주리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므로 행여 실수를 하거나 치욕을 겪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견뎌 내어 극복하게 하는 힘은 언제고 시간이 흐르면 잊을 수 있다는, 잊혀지리라는 믿음이다. 그렇다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가장 큰 힘은, 죽는 날까지 세상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질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끊임없이 그녀에게 되새김질 해주는 한, 그녀 또한 그 상처를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결국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을 막지 못했던 원인은, 우리 모두의 타인에 대한 지나치게 과열된 관심과 끝없이 이어지는 호기심이리라.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한다. 자신의 상처를 잊으려 노력하듯 타인의 실수도 잊어 주자. 그리고 자책, 책임, 정의, 응징 등은 모두 잊고 그녀의 아름다웠던 모습만 기억하며 조용히 보내 주자. 그게 남은 자의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한화 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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