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 휴스의 프리미어리그 이야기]성적지상주의 찌든 伊축구 낭만 심어주기 나선 바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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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축구가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탈리아는 월드컵 챔피언이었고 세리에A의 인터 밀란은 유럽 챔피언스리그와 클럽 월드컵까지 제패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지난해 남아공 월드컵 F조에서 2무 1패로 16강에 진출하지도 못하고 왕좌를 스페인에 내줬다. 인터 밀란을 포함해 이탈리아 클럽 세 팀이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올랐지만 오래돼 다 쓰러져가는 그들의 스타디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탈리아 선수도 찾아보기 힘들다.

미래는 더 암울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21세 이하 유럽선수권대회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이런 쇠퇴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가 낳은 스타 로베르토 바조(44)가 이런 분위기를 바꾸려 하고 있다. 7년 전에 선수 생활을 접은 바조는 지도자 생활을 거부하고 농장을 경영하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국제 기아(飢餓)대책을 위한 자선행위를 했고 불교에 귀의하기도 했다. 축구 밖에서 하모니를 찾았다.

‘꽁지머리’ 바조는 “현대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현대축구에선 바조가 보여줬던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을 찾아보기 힘들다. 바조는 이탈리아는 성적지상주의에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 지도자는 전술과 체력, 움직임만을 강조한다는 것. 그는 “현대축구는 1980, 90년대에 비해 훨씬 빨라졌다. 하지만 아주 다른 스포츠로 변형됐다”고 말했다.

그러던 바조는 최근 이탈리아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아 3만5000여 각급 지도자를 이끌게 됐다. 바조는 “난 전문지도자는 아니다. 기본에 충실하며 변화를 유도해 유망주 발굴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바조가 추구하는 이상은 남미 축구의 화려함이다. 그는 이탈리아 축구도 재능은 있는데 억압을 받고 있다고 분석한다.

바조는 아르헨티나 출신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가장 좋아한다. 그는 “메시는 놀이터의 아이같이 플레이한다. 팀 전술이나 동료, 상대 선수에게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조는 메시의 멋진 플레이는 호세프 과르디올라 바르셀로나 감독의 영향이라고 본다. 그는 “과르디올라는 대담하다. 절대 선수들의 재능을 제한하지 않는다. 재능 있는 메시가 펄펄 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4강 신화를 창출한 거스 히딩크 전 한국 대표팀 감독은 운이 좋았다. 그는 적절한 때 적임자로 활약했다.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그에게 전권을 줬다. 히딩크는 규율과 책임감 등에서 확고한 철학을 가졌다. 그는 성적에 예민한 현대적 의미의 지도자다. 하지만 그는 재능을 발견해 이를 발전 및 확장시켰고 세련되게 다듬었다.

필자는 2001년 히딩크에게 “유럽 스타일을 접목시키기보다는 한국 고유의 축구문화를 살리는 게 낫지 않느냐”고 물었다. 히딩크는 “내가 유럽식으로 한국 선수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보느냐”고 반문했다. 히딩크는 짧은 시간에 대한민국을 완전히 바꿔 아시아 사상 첫 4강이란 대업을 이루는 것으로 답했다. 바조의 길은 히딩크와는 다르다. 바조는 승리지상주의에 매몰된 부정적인 이탈리아 축구문화를 바꿔야 한다. 낭만이 사라진 시스템에 낭만이란 꽃을 피워야 한다. 히딩크보다 훨씬 어려운 과업을 맡았다. 그에게 행운을 빈다.

잉글랜드 랍휴스 칼럼니스트 ROBHU800@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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