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나도야 간다]여자 레슬링대표 4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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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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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레슬링도 효녀소리 한번 들어봐야죠”

배미경, 박상은, 엄지은, 김형주(왼쪽부터) 등 여자 레슬링 4총사가 1일 서울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광저우 아시아경기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배미경, 박상은, 엄지은, 김형주(왼쪽부터) 등 여자 레슬링 4총사가 1일 서울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광저우 아시아경기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태릉선수촌 앞에서 택시를 타면 기사님들이 무슨 종목이냐고 물어봐요. 레슬링 한다고 하면 프로 레슬링이냐면서 남편 때려잡겠다고 하시죠.”

웃으며 말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에 여자 레슬러라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레슬링 선수라는 것을 숨긴 적도 있었단다. 그래도 1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여자 국가대표 레슬링팀 4총사(48kg급 김형주, 55kg급 엄지은, 63kg급 박상은, 72kg급 배미경)의 눈빛은 이글거렸다.

김형주(26·창원시청)는 “누가 뭐라 해도 레슬링 선수인 게 자랑스럽다. 고등학교 시절 유도를 그만두고 힘들었는데 레슬링이 꿈을 되찾게 해줬다. 처음엔 딱 붙는 유니폼이 민망했지만 이젠 여전사 같아서 멋지다고 생각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더, 더, 더, 끝까지, 죽을 때까지, 마무리….” 코치진의 호령이 훈련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가운데 땀을 비 오듯 흘리는 4총사는 마치 콜로세움에서 사투를 벌이는 전사 같았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모여 한바탕 수다를 늘어놓는 이들은 영락없는 20대 요조숙녀였다. 박상은(22·서울 중구청)은 “남자 선수만큼은 아니지만 귀 안쪽이 굵어지고, 반지를 끼기 힘들 정도로 손가락 모양이 변했다. 그래도 잘 차려입으면 우리도 보통 여자만큼 예쁘다”라며 수줍게 웃었다.

여자 레슬링 4총사는 이번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세계 최강 일본, 중국과 메달을 다퉈야 한다. 5세부터 레슬링 교육을 시작하는 일본은 유소년 인구가 20만 명이 넘는 강국이다. 중국도 등록 선수가 1만 명에 이른다. 고등학교 이후에 입문한 선수 200명이 전부인 한국과는 차이가 크다. 배미경(26·서울 중구청)은 “중량급에 나가면 같은 동양인인데도 몸이 훨씬 큰 선수와 대결한다. 상대의 손바닥만 봐도 위축되지만 직접 부딪쳐 보니 해볼 만했다. 꿈이었던 아시아경기에 나가는 만큼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은메달리스트 김형주와 2010년 아시아선수권 1위 박상은 등이 메달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황영태 감독은 “늦게 시작한 선수들이라 기본기와 근육량 등에서 차이가 나는 게 사실이지만, 4명 다 메달권과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막판 체력만 뒷받침된다면 메달 2개까지 노려볼 만하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행스럽게도 한국 여자 레슬링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2011년부터 전국체전 여자 고등부가 신설돼 저변 확대의 전기가 마련됐다. 국가대표 4명 중 3명을 배출한 서울 중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와 실업팀들의 지원도 지속되고 있다.

엄지은(23·서울 중구청)은 “관심이 남자 레슬링에만 쏠려 있는데 광저우 다녀오면 여자 레슬링도 효자 종목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좋은 성적을 내면 후배들도 많아지고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각오를 다졌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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