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시간 기적의 골… 이보다 짜릿할 순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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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적인 16강 진출 사례들

23일 남아공 프리토리아 로프투스페르스펠트 경기장에서 열린 미국과 알제리의 C조 조별리그 최종전. 경기 종료 직전까지 스코어는 0-0. 같은 시간 잉글랜드는 슬로베니아를 1-0으로 이기고 있었다. 경기가 그대로 끝난다면 잉글랜드와 슬로베니아가 16강에 진출하고, 미국은 탈락하는 상황.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후반 추가 시간 1분 미국의 클린트 뎀프시가 날린 슛을 알제리 골키퍼가 막아내자 랜던 도너번이 번개같이 달려들며 다시 차 넣은 것. 미국은 이 골로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했고, 슬로베니아는 다 잡았던 16강 티켓을 놓치고 말았다.

월드컵 역사를 살펴보면 이렇게 농구의 버저비터와 비슷한 골을 넣으며 기적적으로 16강에 진출한 팀이 종종 있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노르웨이가 대표적이다. 노르웨이는 당시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극적으로 16강에 올랐다.

○ 1998년 노르웨이, 브라질전서 기사회생

노르웨이가 2승으로 조 1위를 달리던 브라질과의 경기를 앞두고 거둔 성적은 2무. 1무 1패씩을 거둔 같은 조의 모로코와 스코틀랜드보다는 16강 진출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동시에 벌어진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모로코가 스코틀랜드를 앞서가면서 노르웨이는 초조해졌다. 브라질을 이겨야 조 2위까지 주어지는 16강 티켓을 노려볼 수 있었던 것. 후반 23분에는 브라질의 베베투에게 한 골을 허용해 패색이 짙어졌다. 경기가 그대로 끝난다면 1승 1무 1패의 모로코가 2무 1패의 노르웨이를 조 3위로 밀어내고 16강에 진출하는 상황이었다.

노르웨이의 추격은 토레 안드레 플로가 동점골을 넣은 후반 38분부터 시작됐다. 5분 뒤에는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다. 브라질 수비수가 페널티지역 안쪽에서 반칙을 범해 페널티킥이 선언됐고, 셰틸 렉달이 침착하게 차 넣어 2-1 승리를 거뒀던 것. 이 한 골로 모로코는 스코틀랜드를 3-0으로 이기며 1승 1무 1패로 승점 4점을 거뒀지만 탈락했고, 노르웨이는 1승 2무(승점 5점)로 16강에 올랐다.

○ 1990년 우루과이도 한국 꺾고 환호

한국과 16강에서 맞붙는 우루과이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한 역사를 갖고 있다. 공교롭게도 우루과이가 만들어낸 기적의 상대는 한국이었다.

1무 1패로 E조 3위를 기록하고 있던 우루과이는 16강에 오르기 위해서는 한국을 꼭 이겨야 했다. 하지만 2패를 당한 한국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경기 종료 직전까지 득점을 못하며 16강 탈락 위기에 몰렸던 우루과이는 후반 45분 다니엘 폰세카의 극적인 헤딩골로 1-0 승리를 거뒀고, 각 조 3위 6팀 중 상위 4팀에 주어지는 와일드카드로 16강에 진출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비인기 설움, 우승으로 털자” 야무진 美축구▼

뉴욕 양키스 경기를 전담 중계하는 YES 네트워크는 이달 초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어떤 스포츠 이벤트를 가장 보고 싶은가라는 질문이었다. 팬들 가운데 37%는 미국프로농구(NBA) 챔피언결정전을 꼽았다. 남아공 월드컵은 4%의 지지에 그쳐 US오픈 골프(25%), 윔블던 테니스(17%)에도 한참 못 미쳤다. 축구가 미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읽을 수 있는 여론조사다. 농구, 야구를 비롯해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골프 등 워낙 자국 내 프로 스포츠가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축구 불모지는 아니다. 축구 저변은 오히려 우리보다 넓다. 세계 랭킹도 14위로 한국(47위)보다 한참 높다. 미국 팬들은 잘 모르지만 미국축구협회는 야무진 계획을 실천에 옮겨왔다. 바로 ‘2010 프로젝트’다. 미국은 1994년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2010년에는 우승을 거둔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웠다. 알제리전에서 16강 진출을 견인한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린 랜던 도너번을 비롯해 잉글랜드전에서 상대 골키퍼의 실수로 행운의 골 주인공이 된 클린트 뎀프시, 에르쿨레스 고메스, 다마커스 비슬리 등이 이 프로젝트로 육성된 선수들이다.

미국은 현 대표팀 23명 가운데 19명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해 유럽에서 활동할 정도로 실력을 갖추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명예 유치위원장으로 내세워 2018년과 2022년에 또 한 번의 월드컵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기도 하다.

‘2010 프로젝트’는 일단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미국은 16강 진출뿐 아니라 1승 2무로 C조 1위에 올랐다. 월드컵 단독 중계권을 갖고 있는 ESPN 등 미국 언론은 알제리전 승리를 미국 스포츠 사상 가장 멋지고 위대한 장면으로 꼽았다. 미국은 27일 아프리카의 유일한 희망 가나와 16강전에서 맞붙는다. 미국으로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가나에 져 16강이 좌절된 데 대한 설욕전이다.

미국 축구가 중흥기를 이루느냐, 후퇴하느냐. 남아공 월드컵이 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무대다.

로스앤젤레스=문상열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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