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기자의 베이스 블로그] 정수근 음주…번민과 연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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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8일 07시 00분


#여기 살인범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기자입니다. 그자가 어찌해서 ‘괴물’이 됐는지 살아온 역정을 모두가 알고 싶어 합니다. 당신은 기자적 친화력을 발휘해 살인범과 인간적 신뢰를 쌓습니다. 필생의 목표인 ‘완벽한 논픽션’이 눈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는 그 인터뷰를 책으로 펴낸 뒤 ‘파멸’합니다.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하게 됐죠. 영화로도 제작됐던 트루먼 카포티의 팩션 ‘냉혈한(in cold blood)’은 그렇게 창작됐죠. ‘진실’을 쓰자니 인간적 신의를 저버리게 되고, ‘살인범의 입장’을 부각하자니 너무나 명백한 사실 앞에서 카포티는 질식한 것이겠죠. 타이틀 ‘냉혈한’은 살인범이 아니라 카포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13일 새벽 정수근(사진)이 또 술 때문에 사고를 쳤다는 뉴스를 봤을 때 느낌은 ‘내 그럴 줄 알았다’가 아니라 서글픔에 가까운 복잡한 심정이었습니다. 그와 저는 그 흔한 인터뷰의 기억조차 없습니다.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네요. 그러니 호불호 감정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으로는 더 미안했죠. 작년 여름, 롯데가 정수근 구명을 추진했을 때 스포츠동아는 거의 유일하게 ‘반대’를 주장한 언론이었습니다. ‘무기한 자격정지’라는 원칙의 무게를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롯데 담당기자로서 한 사람의 앞길을 막는 입장이 됐기에 꽤 번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롯데구단 어느 분의 “그래놓고 복귀하면 정수근 얼굴 어찌 보려고 그러냐?”라는 말에 “할 수 없다”라고 답한 기억도 나네요. 어쨌든 정수근은 복귀했고, 차라리 잘됐다 싶었습니다. KBO 총재와 롯데의 포퓰리즘에 대한 분노는 별개겠지만요. 그러나 정수근은 얼마 안 있어 또 술과 연관된 물의를 일으켰죠. 그때 그와 처음 통화를 했습니다. “이런 일로 전화해서 아쉽다”고 하자 뜻밖에도 그는 “괜찮아요”라고 하더군요. 스포츠동아가 끝까지 엄격한 스탠스를 유지했다는 걸 알았을 텐데도 두 차례에 걸쳐 전화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죄가 밉지 사람이 밉냐?” “술이 원수다”라며 동정심을 갖겠지요. 정수근에 온정적인 기사도 어디선가 나올 테고요. 정수근은 한국여론이 중시하는 정(情)의 빛과 그림자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감정에 근거한 여론은 물과 같습니다.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는 것도 물이지요. 이런 세태에서 ‘냉혈한’이 아니면 기자로서 실격일지도 모르겠네요.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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