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배의 열린스포츠] 비운의 임수혁, 그리고 그를 사랑한 사람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0년 2월 9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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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삼성과 롯데의 플레이오프 7차전. 3-5로 패색이 거의 짙던 롯데의 9회초 마지막 공격, 1사 1루에서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 임수혁은 삼성 임창용의 바깥쪽 낮은 공을 걷어 올려 홈런으로 연결하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필자는 당시 3루측에서 이 경기를 지켜보았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그해 가을 귀국해서 처음 현장에서 본 게임이 바로 임수혁을 영웅으로 만든 플레이오프 7차전이었다. 롯데 팬들에게는 유두열의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 역전홈런과 더불어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으리라.

2000년 잠실 LG전 사고이후 거의 10년 동안 투병생활을 해온 임수혁이 결국 팬들과 영원히 작별했다. 임수혁이 1994시즌부터 2000시즌까지 포수 마스크를 쓰면서 통산 448경기에 출장해 기록한 345안타 47홈런 257타점 타율 2할6푼6리는 기록으로만 보면 평범할 수도 있다. 단지 중요한 순간마다 터진 ‘한방’이 적어도 롯데팬에게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어린 시절 부유하게 자라, 정서적으로 여유가 있는 호인(好人)이었으며 은퇴 이후에도 야구계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았던 임수혁. ‘못다 핀 꽃 한 송이’는 바로 임수혁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가끔 그의 근황이 전해질 때마다, 야구계는 가슴속에 무거운 돌덩이를 안고 사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미흡하지만, 임수혁 덕분에 2군 경기에도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병마에 가족이 겪었을 고통과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마 임수혁을 사랑하는 동료와 팬들 때문이었으리라. 지난 10년간 롯데와 히어로즈 선수단, 프로야구선수협회, 이상훈과 구대성을 비롯한 동료들이 보여준 성원과 격려는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의 ‘의(義)’의 결정체였다. 특히 한순간도 흔들림 없이 그 오랜 세월, 임수혁을 위해 진심으로 봉사하고 쾌차를 기원하며 수많은 행사를 주관한 ‘임수혁을 사랑하는 모임’과 같은 팬들은, ‘누가 야구를 진심을 사랑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주었다. 임수혁이 무겁지 않게 발길을 돌릴 수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 때문이리라. 비록 그는 이제 영원히 떠나갔지만 이곳 사직의 부산팬들은 임수혁을 쉽게 잊기 힘들 것이다. 그가 남긴 추억이 그가 남긴 기록보다 훨씬 가슴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지 프로야구의 구조적인 시스템과 관련해서 굳이 한마디 하자면, 임수혁의 투병과 죽음은 한국 프로야구 전체의 비극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굿바이 임수혁!

동명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경구를 좋아한다.
스포츠에 대한 로망을 간직하고 있다
현실과 로망은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로망과 스포츠의 '진정성'을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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