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390만원… 단벌 유니폼… 날때만 행복하죠”

  • 입력 2009년 8월 28일 03시 00분


영화 ‘국가대표’의 실제 모델인 스키점프 대표팀의 김흥수 코치와 강칠구, 최용직(오른쪽부터)이 25일 6월에 준공된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스키점프 경기장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이들은 경기장에서 차로 20분을 달려야 나오는 황량한 공터에서 훈련을 하며 영화보다 더 극적인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 평창=서영수 기자
영화 ‘국가대표’의 실제 모델인 스키점프 대표팀의 김흥수 코치와 강칠구, 최용직(오른쪽부터)이 25일 6월에 준공된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스키점프 경기장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이들은 경기장에서 차로 20분을 달려야 나오는 황량한 공터에서 훈련을 하며 영화보다 더 극적인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 평창=서영수 기자
영화 ‘국가대표’에선 달리는 승합차에 올라가 중심잡기 훈련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훈련을 하지 않는다. 사진 제공 KM컬쳐
영화 ‘국가대표’에선 달리는 승합차에 올라가 중심잡기 훈련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훈련을 하지 않는다. 사진 제공 KM컬쳐
영화보다 눈물겨운 스키점프 국가대표 현실

《아무리 그래도 스포츠센터 정도 되는 곳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있으리라 기대했다. 6월 준공된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스키점프 경기장에서 차로 2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황량한 공터. 정해진 훈련 장소도 없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곳에서 훈련한다. 25일 만난 스키점프 대표팀 훈련 현장이다. 최근 스키점프 대표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국가대표’가 인기몰이 중이다. 하지만 실제 대표팀이 처해 있는 상황은 영화 그 이하였다. 스키점프 대표 선수는 달랑 4명. 김흥수 코치(29)를 비롯해 최흥철(28), 최용직(27), 김현기(26), 강칠구(25)가 전부다. 강칠구를 제외한 세 선수는 국내에 스키점프가 처음 도입된 1991년부터 18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다. 스키점프 1세대인 이들은 새로 들어오는 선수가 없어 10년 가까이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네명중 셋은 18년째 한솥밥 영화 뜬후 지원 좀 늘었네요
중고생 후보 3명 함께 훈련 경쟁 통해 성적 올려야죠

대한스키연맹 등록 선수는 10명 남짓. 대표팀 이외에 국제대회에 출전할 기량을 갖춘 선수는 거의 없다. 가까운 일본은 스키점프 선수가 600여 명에 이른다. 유럽은 나라마다 수천 명의 대표 후보군이 있다. 이 때문에 최용직은 “국제대회에 나가면 외국 선수들이 ‘또 너희들이냐’며 놀라워한다”고 말했다.

스키점프는 비인기 종목이다. 대표팀의 현실은 열악하다. 김흥수 코치는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받는 돈은 훈련수당이 전부로 일당 3만 원이다. 1년간 모으면 390만 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매달 45만 원의 연금을 받지만 그 이상이 훈련 경비로 들어간다. 제대로 된 유니폼도 없다. 1년에 한두 벌로 버티다 보니 찢어진 옷을 입고 경기에 나선 적도 있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막노동은 기본이고 인형 탈을 쓰고 홍보 도우미도 했다. 인력 시장에 기웃거리기도 했다.

올해 해외 전지훈련 비행기 티켓은 외상으로 끊었다. 다행히 지난해 최흥철과 김현기가 실업팀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머지 2명은 아직도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영화 ‘국가대표’가 뜨면서 지원이 조금씩 늘고는 있다. 강칠구는 “메달 10개를 따는 것보다 영화 한 편으로 대접이 달라졌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런 힘든 환경 속에서도 대표팀의 국제대회 성적은 반짝반짝 빛났다. 2003년 이탈리아 타르비시오 동계유니버시아드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같은 해 아오모리 동계아시아경기에선 단체전 금메달을, 올해 중국 하얼빈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선 금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강칠구는 “세계 수준과 큰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힘든 현실 속에서도 미래를 키우고 있다. 국가대표 후보인 중고교생 3명과 함께 훈련을 하고 있다. 최용직은 “4명이 10년간 함께 있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한다. 새로운 후배들과 경쟁을 하며 성적이 좋은 선수 4명이 나서는 게 대표팀의 미래를 위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땅에서는 생계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만 하늘을 날 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스키점프 대표팀. 열악한 현실을 딛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그들에게서 영화 그 이상의 감동이 느껴졌다.

평창=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부상 땐 후보가 대신? 경기중엔 교체 불가

■ 영화와 현실의 다른 점

영화 ‘국가대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구성을 위해 일부 과장과 각색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화를 직접 본 스키점프 대표팀 선수들은 “많은 부분이 영화와 닮았지만 선수의 눈으로 봤을 때 실제와 다른 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영화와 현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일단 대표팀이 훈련하던 무주리조트의 스키점프대는 동계올림픽 유치와는 상관이 없다. 1997년 무주에서 개최된 동계유니버시아드를 위해 만들었다. 영화에서 무주는 2002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섰다가 떨어진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무주는 국내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 올림픽 유치 후보 도시가 된 적이 없다. 동계올림픽 유치에 뛰어든 도시는 평창이다.

영화에서 대회 도중 4명의 선수 중 한 명이 부상하자 후보선수가 대신 나섰다.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4명 정원의 엔트리에 등록을 하면 경기 중에는 바꾸지 못한다. 해설자가 경기 도중 “100m를 나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하는 부분도 일부 다르다. 최용직은 “100m를 날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바람과 점프장의 여건에 따라 날 수 있는 상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서 스키점프 대표팀은 달리는 승합차 천장에 올라가 중심잡기와 허리에 끈을 매달아 위로 들어올리는 훈련을 한다. 하지만 대표팀은 요즘 그런 훈련을 하지 않는다. 주먹구구식 훈련은 용도 폐기된 지 오래다.

영화에서처럼 비 오는 날에도 훈련은 한다. 하지만 영화 주인공들처럼 웃고 즐기는 시간은 아니다. 강칠구는 “비가 오면 옷이 무거워져 웃을 틈이 없다. 힘들어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훈련에 임할 뿐”이라고 말했다.

평창=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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