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넣었다 뺐다’ 누더기 병역특례 조항

  • 입력 2009년 3월 26일 02시 58분


강승규의원 “WBC 선수들에 혜택 주자” 법개정 추진

여론 편승 선심 베풀기… 잠잠해지면 슬그머니 삭제

정치권과 야구계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선수단에 병역특례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한야구협회장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강승규 의원은 25일 “WBC에서 선수들이 혼연일체가 돼 많은 국민에게 희망을 줬지만 병역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서 병역법 개정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스포츠 선수에 대한 병역특례 기준이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인기영합적인 차원에서 수시로 바뀐 경우가 많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1994년 스포츠 선수에 대한 병역 특혜를 주기 시작한 이후 여론에 편승해 선심을 베풀었다가 슬그머니 관련 규정을 없애는 일을 거듭했다.

현행 병역법 시행령 49조에 따르면 올림픽대회에서 동메달 이상과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에 한해 병역 특혜를 인정하고 있다. 이들은 4주 동안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3년간 해당 종목에서 선수나 코치로 종사하는 것으로 병역 의무를 대신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이 4강에 진출하자 정부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대회 도중 “국위를 선양한 선수들에게 군 면제 혜택을 주겠다”면서 서둘러 병역법 시행령을 고쳐 이들이 병역 특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2006년 9월 22일 WBC 1회 대회를 앞두고는 선수들에게 좋은 성적을 유도하는 ‘당근’이 될 수 있다는 야구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WBC 4강 진출 시 병역특례’ 조항을 신설했다.

월드컵이나 WBC처럼 국민적 관심이 높은 국제스포츠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에게 정치권이 앞장서 ‘선물’을 준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2007년 12월 28일 병역법 시행령을 고쳐 월드컵 16강과 WBC 4강 특례 조항을 없앴다. 일각에서 “병역 혜택을 남발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다른 비인기 종목과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병역특례 조항이 손쉽게 바뀌면서 국회와 청와대에는 매년 ‘국위 선양’이라는 명목으로 병역을 면제해 달라는 집단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태권도, 유도, 레슬링, 양궁, 탁구, 테니스 등 세계선수권대회가 있는 스포츠 종목뿐만 아니라 바둑대회 수상자,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입상자, 한류 스타까지도 병역 특혜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방부 장관 출신의 한나라당 김장수 의원은 “병역 의무까지 여론과 정서에 따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병역특례 혜택은 엄격히 제한하고 스포츠 선수 격려는 국군체육부대 입대나 체육훈장 등 다른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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