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조와 장정구만 있으면 자장면 가게 차린다

  • 입력 2009년 3월 17일 13시 51분


“황영조만 있으면 자장면가게 차리는데 문제없을 거에요.”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와 전 세계챔피언 장정구가 잘 하는게 또 있다. 즉석 자장면 만들기다. 그 것도 1,2인 분이 아닌 100인분을 그 자리에서 뚝딱 만든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세계챔피언이 직접 만드는 자장면의 맛은 어떨까.

14일 오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위치한 무지개동산 ‘예가원’(정신지체 장애인생활시설). 내로라하는 국내 스포츠 스타 선수들 7명과 자원봉사자들 23명이 ‘함께하는 사람들’이 새겨진 파란 조끼를 입고 분주하게 점심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회장인 장윤창(배구)을 비롯해 황영조(마라톤), 이진택(높이뛰기), 정재은(태권도), 이경근(유도), 장정구(프로권투), 이은철(사격)이 소매를 걷고 ‘예가원’ 가족들을 위해 ‘사랑의 자장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두 각 분야에서 국내 최고로 활약했던 스타플레이어들이다.


▲동아닷컴 서중석 기자
정주희 기자

이 날 만들어내야 할 자장면은 100여 그릇. 오래 걸리지 않을까라는 기자의 조바심이 있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현장에서 ‘사랑의 자장면’ 100그릇을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30분. 자장면 소스는 좋은 국산 재료로 방문하기 전날 미리 만들어놓고 현장에서 직접 반죽, 기계로 면을 뽑아 삶는다. 한두번들 해본 솜씨가 아닌지라 팀원들의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진다. 설거지 팀, 면 뽑는 팀, 면 삶는 팀, 자장을 퍼주는 팀, 음식 나르는 팀, 빈그릇 수거팀, 하물며 반찬 보충팀까지 30분 동안 모두 숨 가쁘게 돌아간다.

황영조와 같이 면을 뽑던 이은철 선수는 “‘함께하는 사람들’활동을 시작한지 2년 됐다. 매달 참석할 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고 자장면 만드는 실력도 점점 늘고 있다”며 “황영조만 있으면 자장면 가게 차릴 수 있을 거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예가원’가족인 남덕현(27)씨는 “기분이 너무 좋고 감사드린다. 많이 본 얼굴도 있고 처음 본 얼굴도 있다. 함께 있으니 너무 좋다”며 “자장면이 맛있을 것 같다”고 기대에 찬 얼굴로 테이블에 앉아 자장면을 기다렸다.

장정구 선수의 부지런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조그만 체구에 바쁜 발걸음으로 넓은 쟁반에 단무지와 김치를 담아 3층으로 올라갔다. 1층 식당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예가원’ 가족들을 위해 배달에 나선 것이다. 방 하나하나마다 반찬그릇을 내려놓고 1층으로 내려온 장정구는 무거운 수저통을 들고 다시 3층으로 올라간다. 얼굴하나 찌푸리지 않고 ‘예가원’ 가족들에게 자장면 한그릇 한그릇 가위로 잘라주고 많이 먹으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예가원’의 생활재활교사 김은경(28․사회복지사)씨는 “‘함께하는 사람들’은 매년 5월에 열리는 장애인 마라톤대회인 ‘희망마라톤대회’에도 참가해 여러 사람을 격려한다.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생활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며 “이런 관심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하루하루 도움이 된다.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함께하는 사람들’은 1999년부터 각종 사회단체를 찾아다니며 ‘사랑의 자장면’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들은 왜 ‘자장면’을 택했을까. 황영조는 “오래 전 봉사활동을 하던 때에는 음식준비는 없었고 봉사활동 만을 했었다. 그 때 복지시설에 있던 한 아이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묻자 ‘자장면이 먹고 싶어요’라고 답하길래 자장면을 시켰다. 하지만 시설에 있는 가족들의 자장면을 한꺼번에 주문 처리하다보니 ‘퉁퉁 불은’ 자장면이 배달된다는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 때부터 ‘함께하는 사람들’은 자장면을 직접 만들어주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사단법인 ‘함께하는 사람들’은 1999년 1월 7일. 장윤창(배구), 김현준(농구), 서향순(양궁), 현정화(탁구), 황영조(마라톤), 전기영(유도) 6명이 모여 결성했다.

현재 ‘함께하는 사람들’의 회원 수는 700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현역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다보니 한 달에 한 번 참여하기도 힘든 선수들이 있다는 것이 황영조의 설명이다. ‘예가원’을 방문한 이 날도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인 황영조는 오전시간에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바로 ‘예가원’으로 이동했다. 그는 “봉사라는 것이 거창한 것은 아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는 것이 봉사다. 우리는 무엇보다 시간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달에 꼭 한 번은 봉사활동에 참여 한다”고 설명했다.

이인호 사무국장은 “총 700여명에 이르는 회원 수이지만 그 날 참여하는 사람들 수는 시설의 규모에 따라 정해지기도 한다. 그 날 만들어야 할 ‘사랑의 자장면’이 1000여 그릇이라면 많은 봉사자들을 필요로 하지만 오늘 같이 100~300그릇 정도는 30명의 인원으로도 가볍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은 규모일 때 많은 봉사자들이 참여하면 오히려 복잡하고 역효과가 난다”고 설명했다.

2003년 4월, ‘장애인과 스포츠스타가 함께한 통일기원 금강산등반’을 다녀온 황영조는 “당시 30명의 스포츠선수들이 30명의 장애인 친구들을 1:1로 도와 단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금강산 구룡연 등반에 성공했다. 이 친구들에게 사랑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이 친구들이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분위기를 사회에서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성남=정주희 동아닷컴기자 zooey@donga.com

서중석 동아닷컴기자 mi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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